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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15
한자 梧津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운문면 오진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운문면 오진동에서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오진리 운문댐 건설로 수몰
성격 법정리
면적 14.05㎢
가구수 109가구
인구[남,여] 180명[남자 85명, 여자 95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오이동(梧耳洞)과 소진동(小津洞)을 병합하여 오진동이라 하였다. 마을로는 상리(上里), 오이동(梧耳洞), 숲 안, 용방(龍坊), 정상(頂上), 점 터, 소진(小津) 등이 있었다.

상말[上里]은 오진동에서는 가장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옹강산 기슭에 금수탕이라는 약수가 있고, 지금은 인가는 없다. 숲 안은 오이골 안쪽에 숲 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점 터[점 터골]는 오릿골과 숲 안 마을 중간에 있는 마을로 운문 솥이 생산되던 곳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때부터 제철(製鐵)을 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증명할 만한 문헌 기록은 없다. 솥을 만든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일찍부터 쇠를 다루었다는 것은 운문산 일대에 많이 남아 있는 슬러지(sludge)로 보아 알 수 있다.

오이동은 용방(龍坊) 또는 오릿골이라고도 하며, 오진리의 중심 마을이었다. 『마을 지명 유래지』나 『운문댐 발굴 조사 보고서』에는 옛날 큰물 난리 때 인근 주민들이 오동나무 배를 타고 피신하여 재난을 넘겼다고 해서 오이동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지만, 골이 깊어 오리나 된다고 해서 오릿골이란 설도 있다.

정상은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과 경계이며 먹방 정상과 멀지 않다. 정상이라는 말은 고개 마루라는 뜻이다. 소진은 『마을 지명 유래지』에는 작은 나루가 있어서 소진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원래 이름은 쇠징이다. 쇠징이란 작은 점 터라는 뜻으로 이곳에도 쇠를 다루던 점 터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형성 및 변천]

운문사와 함께 있었다는 소보갑사가 있었던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 아래쪽에는 혈거지가 있어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이위면(二位面)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오이동과 소진동을 병합하여 오진동이라 하고 운문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오진동에서 오진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문복산 줄기에서 형성된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운문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져서 무적천을 이루고, 운문댐으로 들어간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14.05㎢이며, 총 109가구에 180명[남자 85명, 여자 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북동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북서쪽은 운문면 방음리, 남쪽은 운문면 신원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수몰 이전에는 오진리에는 상리(上里), 오이동(梧耳洞), 숲 안, 용방(龍坊), 정상(頂上), 점 터, 소진(小津)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옛날 마을은 대부분 수몰이 되었고 수몰이 되지 않은 자투리 부분과 소진 마을에만 일부 주민이 살고 있다.

농경지는 대부분 운문댐에 수몰되었고, 오진리 입구에 있는 농경지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 한국 수자원 공사에서 지원을 받아 표고버섯을 주 작물로 재배하고 있다. 또 논밭에는 토마토를 재배하여, 관광철에 주민들이 길가에서 판매하고 있다. 남서쪽으로 국가 지원 지방도 69호선방음리, 순지리와 연결되고 있다.

2008년 산림청의 산촌 생태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4월부터 생태 마을 조성사업으로 총 사업비 14억 원을 들여 청정 임산물 가공 창고 1동, 표고버섯 재배 하우스 18동, 산촌 녹색 체험관 6실, 등산로 등이 조성되어 2012년 7월에 완공되었다.

운문댐 끝 부분에 혈거지가 있었나 지금은 모두 물에 잠겼고, 소보갑사가 있었던 곳은 남양 홍씨들의 묘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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