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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92
한자 梧山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각북면 오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각북면 오산동에서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9.247605㎢
가구수 235가구
인구[남,여] 449명[남자 224명, 여자 225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청도군의 가장 서북쪽에 위치한 오산리용천사가 있다. 대구와 인접한 전원주택 단지로 알려져 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오이와 고산의 이름을 따서 오산동이라 하였다. 오산리는 고산(高山)[귀미]와 삼천(三泉), 오리(梧里)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동네이다. 덕산과 오리 사이에 있는 고산은 『대구읍지(大邱邑誌)』에는 고며리(古旀里)라고 적혀 있고, 마을 사람들은 귀미라고 부르고 있다.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오리는 오산을 말하는데, 『대구읍지』에는 동네 이름이 오이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달성군 화원이나 가창으로 갈 때, 산기슭에 당도해 해가 저물면 오이원(吾耳院)에서 자고 떠났다고 한다. 오이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와 오이리(梧耳里)를 잇는 길목이며, 『대구읍지』는 지금의 가창면을 상수서(上守西)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청 또는 삼천 마을은 마을의 세 곳에 우물이 있다고 하여 삼천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형성 및 변천]

1896년 이전은 대구부 풍각현 각북면으로 『청도읍지』에는 기록이 없다. 1906년에 청도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고산동, 오이동, 금곡동의 비지를 병합하여 오이와 고산의 이름을 따서 오산동이라 하고, 각북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오산동에서 오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비슬산 동쪽 첫 동네인 오산리는 청도군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동네로, 청도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다. 비슬산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은 넓은 경작지가 없는 편인데 계단식 밭과 다랑논으로 되어 있다. 고산 마을 북쪽에 있는 들은 경지 정리가 말끔히 되어 있다. 오리 서쪽에는 대동골이라는 계곡이 있으며 이곳에서 발원한 청도천의 원류인 오산천은 동쪽으로 흐른다. 대동골은 여름이면 피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현황]

2012년 8월 현재 면적은 9.24㎢이며, 총 235가구에 452명[남자 224명 여자 22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로 오산 1리오산 2리가 있으며, 고산과 삼천, 오리 등의 마을이 있다.

비슬산 자락을 따라 지방도 902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지방도 902호선 대구 방면 주유소 옆에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79호로서 용천사 동하 도로 수치 송공 표석이 있다. 이 표석에는 용천사로 오는 길을 닦고 나서 그 힘들었던 것을 삼국지에 나오는 잔도와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용천사에는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대구에서 용천사 물을 받아가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길을 잇고 있다. 1990년대에 각북면 오산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이어지는 길이 연결되어 전원마을로 각광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노후 삶을 즐기기 위해서 찾고 있고, 예술인들도 하나둘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호스피스 병원인 윤성 병원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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