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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64
한자 九谷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각남면 구곡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각남면 구곡동에서 청도군 각남면 구곡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3.089㎢
가구수 68세대
인구[남,여] 134명[남자 60명, 여자 74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곡리는 큰 마을, 탑골, 새터, 셋집매기, 강변, 구터, 긴등밑, 주막, 권정자 등 9개의 자연 마을이 모여서 만들어져 구곡이라고 한다는데, 사실은 구석진 곳에 위치하였다고 구실이라고 부른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 오산(鰲山)[남산] 자락 북쪽에 자리한 구곡리의 큰 마을 옛 이름은 구랑리(九郞里)이다.

탑골 마을은 긴등과 들갓산 사이 골 안에 형성된 마을이다. 신라 고찰의 흔적인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고, 원삼국 시대의 토기가 발굴된다. 이곳에는 절이 있었고 근대까지 탑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절터만 남이 있을 뿐이다. 터만 남은 곳에 탑이 있었다고 탑골로 불려진다.

새터 마을은 구곡리에서는 가장 늦게 형성된 마을이지만, 지금은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구 터인 큰 마을에서 농지를 따라 영농을 하기 위해서 한 집 두 집 모여들면서 형성되었고, 도로변이라는 이점도 작용하였다. 마을 입구의 노목이 동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권장자 및 구 터와 연결된 느낌이 드는 마을이다.

셋집매기 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가 생기면서 셋집이 살았다고 한다. 세의 일본식 발음이 시찌여서 시찌매기라고도 부른다.

강변 마을은 한내천변에 위치한 하천 부지에 띄엄띄엄 한두 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 살고 있다.

주막은 1960년대까지 사람들이 왕래할 때 걸어 다니면서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던 주막집이 있었다. 부근에는 큰 노목(老木)은 권정자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들 가운데 강변 마을에서는 청도 공영 사업 공사가 싸움소를 길렀지만, 지금은 모두 처분하여 빈집으로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토기 조각들이 대변해주고 있지만 역사에 관련된 기록은 전무하다. 조선 시대에 청도군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서 내서면(內西面)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구곡동이라 하여 각남면에 소속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구곡동구곡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오산 자락이 길게 서북쪽으로 뻗으면서 구곡리의 뒷산을 만들어 마을은 북향을 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청도천이 길게 흐르고 있다. 마을 앞 논은 경지 정리가 반듯하게 되어 있어서 영농에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현황]

2012년 8월 현재 면적은 3.089㎢이고, 총 68가구에 134명[남자 60명, 여자 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화리·일곡리, 서쪽은 각남면 예리리·신당리, 남쪽은 각남면 사리, 북쪽은 이서면 서원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큰 마을, 탑골, 새터, 셋집매기, 강변, 구터, 긴등밑, 주막, 권정자 등이 있다.

마을 앞들에서는 2모작으로 양파를 많이 재배하고 있어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 주변에는 청도 반시가 대종을 이루고 있어 주민들의 경제 생활에 보탬이 된다. 북쪽으로 국도 20호선이 동서로 지나고 있다. 마을 앞 옛 도로에는 새로이 4차선 산업 도로가 2014년 개통을 앞두고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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