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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55
한자 土坪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화양면 토평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9년 - 청도군 화양면 토평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토평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화양면 토평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671695㎢
가구수 172가구
인구[남,여] 379명[남자 187명, 여자 192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소속된 법정리

[개설]

화양읍의 가장 북서쪽에 있는 토평리이서면화양읍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마을로서 과거 이서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칭 유래]

토평리의 마을로는 백곡과 와촌 그리고 은행정이 있다. 토평 1리 백곡은 평지에서 쏙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옥가락지처럼 둥그런 지형 속에 박혀 있는 동네라 해서 박곡이라고 한 것이 백곡으로 변했다고 한다. 옛 이서국의 왕성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토성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발굴되지 않아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가 없다.

와목 고개가 있는 토평 2리는 와촌 또는 원토평이라고 한다. 삼성산 줄기가 은행정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낮은 고개가 와목 고개라 불리며, 낮아서 와촌(臥村)이라고 한다.

은행정은 조선 전기에 삼족당 김대유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정자로 이용되어서 은행정이라고 했다고 하며, 동네에서는 이 은행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신봉(信奉)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전에는 차읍면 토평리였으나, 유등동 일부를 병합하여 와촌(瓦村)과 백곡(栢谷), 은행정을 합해서 토평동이라 하고 화양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1979년 화양면화양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양읍 토평동이 되었고, 1988년 토평동에서 토평리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토평 1리는 둘레, 약 1㎞의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에 약간의 인공으로 토성을 만들어 왕성이 있었다고 전하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토성을 1990년 4월에 일부를 경주 박물관에서 확인해 보았는데. 성벽 약 7m의 외벽은 황갈색 암반석 위에 대략 가로30cm 세로 10cm 정도크기의 돌로 2∼3단을 쌓았다. 높이는 약 25cm 였고 석축의 안쪽에는 현재 높이 2m 60cm의 토성을 판축법으로 축조하였으며, 축조 년대는 아마도 5∼6세기 경에 축조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사자의 의견으로는 이서국의 중심 성지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서국과 연결시킬만한 유구나 유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성벽의 유구는 백제 지역에서는 그 예를 찾아 보기가 쉬우나 신라 지역에는 이토성이 처음 밝혀진 것이라며 토성 축조 기법에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였다.

[자연 환경]

조그만 산등 뒤에는 유등 연지가 있고 마을 앞으로는 청도에서는 비교적 넓은 토평들이 유등들과 인접해 있어 전형적인 농촌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 역시 야산이어서 아주 가파른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밭으로 일구어져 있다. 마을 산 뒤로 대곡천이, 앞으로는 한냇강이 흐르고 있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1.671695㎢이며, 총 172가구에 379명[남자 187명, 여자 19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화양읍 유등리, 서쪽은 이서면 고철리·금촌리·학산리, 남쪽은 이서면 서원리·각남면 칠성리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토평 1∼3리가 있으며, 백곡과 와촌 그리고 은행정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을 앞은 깨끗하게 경지 정리된 들에는 군데군데 그린피스 농장이 있어 팽이버섯을 기르고 있다. 복숭아 농사가 주로 짓고 있으며, 점점 감나무로 대치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도 20호선과 연결되는 도로가 지난다. 은행정에는 천주교 토평 공소가 있으며, 백곡리의 청도 탁영 종택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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