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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33
한자 巨淵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대성면 거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0년 - 청도군 대성면 거연동에서 청도군 청도면 거연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청도군 청도면 거연동에서 청도군 청도읍 거연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청도읍 거연동에서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6.30㎢
가구수 122가구
인구[남,여] 261명[남자 133명, 여자 128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오례산성의 서문 쪽에 위치하며, 금호, 사기점, 단산, 기수골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거연’이라는 큰 못이 있어서 거연(巨淵)이라 했다. 청도천구미리에서 내려오다 뿔바위를 만나 큰 구비를 이루고 다시 휘돌아 사촌리(사기점) 앞에서 급하게 흘러 그 물살이 마을 앞에서 큰 소를 이루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례산성의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래 형성된 자연 마을로는 시점이 즉 금호와 계곡(桂谷), 사기점(沙器店), 그리고 단산이 있다. 시점이는 쇠점이라고 하며 쇠를 다루어 농기구를 만들었던 곳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 뒤 밭 근처에서 슬러지(sludge)를 발견할 수 있다. 사기점은 사기그릇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단산은 거연리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마을 앞 청도천신도리 쪽의 산이 불쑥 나와 큰 연(淵)이루어 거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청도군 하남면의 지역으로서 거연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거연동이라 해서 대성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하면서 청도면 거연동이 되었고,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거연동이 되었다. 1988년에 거연동에서 거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거연리청도 김씨의 시조인 영헌공 김지대의 출생지로 알려졌다. 김지대의 어머니가 강에 빨래하러 갔다가 잉어와 접한 뒤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가 있다. 마을에서는 쇠를 다루었다는 것과 사기그릇을 만들었다는 사기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인(匠人)들이 거주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자연 환경]

용각산 지맥이 유천으로 뻗어 가면서 오례산에서 크게 솟아 오른 부분의 자락에 있다. 서쪽으로 청도천이 흐르고 있으며, 동쪽은 모두 산으로 막혀 있다. 남북으로 트여 있으나 청도천이 차지하고 있어 농경에 좋지는 않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 6.30㎢이며, 총 122가구에 261명[남자 133명, 여자 12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동쪽은 매전면 송원리·구촌리, 서쪽은 청도읍 원리·신도리, 남쪽은 청도읍 유호리·사촌리, 북쪽은 청도읍 원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금호, 계곡(桂谷), 사기점(沙器店), 단산, 기수골 등이 있다.

농경에 좋지 않은 땅이어서 예로부터 사기그릇을 만들거나 쇠를 다루어 농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례산성을 가려면 가장 짧은 거리인 기수골을 거쳐서 올라가야 하는데 산자락에 형성된 밭은 대부분 과수작을 하고 있다. 높은 곳과 개간되지 않은 산에는 밤나무가 많이 있어 옛날 밤 밭으로 알려진 땅징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 고속 도로거연리 서쪽을 지나고 있다. 청도 휴게소거연리 남쪽에 자리 잡고 있지만, 마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쪽으로 청도천 건너 신도리의 동쪽 경계선을 따라 경부선 철도와 국도 25호선이 나란히 지나간다. 청도 하수 종말 처리장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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