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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008
한자 南部地方-代表的-風物車山農樂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대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1년 - 청도 차산 농악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4호로 지정
관련 지명 청도 차산 농악 전수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지도보기

[개설]

삼국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농악[풍물놀이]은 지방마다 특색을 띠고 전해 내려왔지만 현재는 다른 지방의 농악과 혼합되어 그 고유한 전통이 약화되고 있다.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4호인 청도 차산 농악은 남부 지방의 대표적인 풍물로 현재까지 그 전통을 이어 오는 농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차산 농악의 발상지인 차산리]

신라 고촌(古村)이라 불리는 차산리(車山里)의 이름은 마을 앞 들판을 구릉과 산등성이가 둥글게 둘러싼 모습이 흡사 수레바퀴 같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차산리는 상차(上車), 중차(中車), 하차(下車) 세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폐교한 남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위쪽은 상차, 아래쪽은 하차, 들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은 중차[중마을]라 하였다. 차산리는 분지형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3,000여 두락[마지기]의 문전옥답을 끼고 130여 가구가 농사에 의존해 온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차산리밀양 박씨가 가장 먼저 거주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더불어 사는 전형적인 각성 마을이다. 2012년 기준 차산리의 가구수는 인근 마을과 같이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크게 줄었다. 논농사에만 의존하던 생업도 미나리 재배 등 특수 작물 재배로 바뀌었다.

차산리는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4호인 청도 차산 농악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청도 차산 농악차산리가 속한 풍각면의 여러 마을이 장터에서 천왕기 싸움을 벌이던 데에서 발전하였다고 전해진다. 경상도 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천왕기 싸움으로 시작하는 차산 농악]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에 접하고 있는 차산리에서는 예부터 정초가 되면 풍각면과 고개 너머 창녕군의 여러 마을이 모여 화려한 천왕기 싸움을 펼쳐 왔다. 천왕기 싸움은 화려하게 단장한 길이 6∼8m의 천왕기를 앞세우고, 마을의 농악대가 정월 11일 풍각 장터에서 서로 마을의 위세를 자랑하며 즐기던 것을 이른다.

천왕기는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의 모든 마을이 소유하고 있는 깃발이다. 본래 당제 때 신 내림을 받는 데 이용되던 것이 놀이의 형태로 변화되면서 천왕기 싸움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차산리의 천왕기는 고종(高宗)이 즉위한 189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깃대와 기, 오색 수건, 헝겊 그리고 꿩털로 이루어져 있다.

깃대는 길이 약 11m, 둘레 약 20㎝의 청죽(靑竹)이며, 윗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대는 총 38마디이며, 각 마디는 30∼40㎝로 되어 있다. 천왕기의 밑뿌리는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 잘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 기는 가로 210㎝, 세로 140㎝의 물이 빠지지 않는 천으로 만들었다. 오색 수건은 여덟 개이며, 헝겊은 기에 옷을 입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차산리의 깃발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원색으로 만든 여섯 개의 헝겊으로 이루어져 있다. 꿩털은 암수의 구별 없이 깃털을 뽑아서 기의 끝에 단다. 청도 차산 농악의 전수자 김오동에 따르면, 오색 수건을 새로이 마련할 경우 아들 갖기를 원하는 집에서 수건을 만들어 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천왕기 싸움 청도군 풍각면을 중심으로 한 마을 단위의 위세 다툼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일대의 마을 주민들이 거의 모두 참여하여 마을의 힘을 과시하였다. 천왕기 싸움은 주로 해가 진 저녁때부터 하는데, 천왕기를 앞세워 농악단과 마을의 유지들이 뒤따르면서 풍각 장터로 내려간다. 풍각 장터에 도착하면 각 마을이 천왕기를 중심으로 길 한복판에 진을 친 채로 서로 천왕기를 굽혀 인사를 하라고 종용한다. 이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서로 기를 맞대고 싸움이 일어난다.

천왕기 싸움 에는 대개 15∼16개 마을이 참여한다. 만약 천왕기 싸움에서 지면 마을의 유지나 마을 사람들에게 원망을 산다. 또한 천왕기를 비롯한 농악기들을 없애고, 다음해에는 새로 마련해야 한다. 그렇기에 동네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청도 차산 농악은 이러한 천왕기 싸움을 발판으로 발전된 농악이다.

[연행 과정]

농악은 대개 한 지역 사회의 최소 단위인 자연 촌락의 동민을 단위로 행하여지며, 각 굿거리의 장단에 따라 순차적으로 쇠의 가락에 맞추어 놀이가 진행된다. 청도 차산 농악은 12가락 36마치의 기본 가락으로 진행된다. 단원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개는 30여 명으로 구성된다. 최근 들어서는 단원이 50여 명으로 늘어나 연행되곤 한다. 과거 농악단보다 수가 늘어난 것은 농악 공연 장소가 확대된 데다가 연희로서의 성격 또한 강해졌기 때문이다.

농악단의 기본 편성은 천왕기[서낭기], 나팔잡이, 고동잡이, 상쇠 1, 중쇠 1, 설징 1, 종징 1, 끝징 2, 설북 1, 종북 1∼4, 끝북 2, 설장구 2, 종장구 1∼4, 끝장구, 설법고 1, 종법고 1∼4, 끝법고, 색시, 양반, 포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왕기, 농기를 앞세운 농악대를 상쇠가 4열 종대로 이끌고 등장한 뒤 인사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놀이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1. 굿거리 춤[춤 굿]

아직 흥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양반이 너울너울 느리게 추는 춤이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점잖게 추는 춤 굿이다. 이때 상쇠를 중심으로 한 네 명의 쇠는 원의 중앙에 우물 ‘정(井)’ 자로 서서 대원을 지휘한다.

2. 부정 굿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상쇠가 쇠를 꺾으면 뒤로 돌아서 두 개의 원을 만든다. 부정 굿에서 두 개의 원을 만드는 이유는 잡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혼자서는 잡신이 도망가지도 않고 쫓을 수도 없으니, 둘씩 가면서 잡신을 쫓고 사고 없이 평안하게 해 달라는 뜻이다.

3. 연풍기 굿[호호딱딱]

부정 굿에서 잡신을 몰아낸 뒤 신명 나게 훨훨 뛰면서 상쇠를 따라 돈다. 이 굿거리는 잡신이 도망가니 신이 난 것을 의미한다.

4. 자진모리 굿[막조우기]

흥겨운 기분으로 쇠를 치는 굿거리이다. 연풍기 굿의 두 개의 원에서 하나의 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쇠를 당겨 부친다. 자진모리 굿은 부정 굿에서 잡신을 쫓아내고, 연풍기 굿에서 기분이 좋은 상태를 계속 고조시켜 농악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다.

5. 물레 굿[미엉 잦기]

무명 농사를 지어서 베를 짜고 물레를 젓는 행위를 상징하는 굿거리이다. 물레 굿은 실을 푸는 형용으로, 본목[면]을 짜서 옷을 해 입어야 농사도 짓고 활동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상쇠가 쇠를 꺾으면 두 명이 한 대형이 되는 것을 2석, 여기서 다시 원이 되었다가 상쇠가 쇠를 꺾으면 세 명이 한 대형이 되는 것을 3석, 그리고 네 명이 한 대형이 되는 것을 4석이라 한다.

6. 진 굿[2석, 3석, 4석]

무명으로 옷을 해 입은 뒤 일하러 갈 때 열을 지어 가는 과정이다. 아마 이 과정은 옛날의 두레 굿 형태가 남은 자취로 보인다. 진 굿 역시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상쇠가 쇠를 꺾으면 뒤로 돌면서 두 개의 원을 만들어 도는데, 이것을 2석이라 한다. 세 개의 원을 만들어 도는 것을 3석, 네 개의 원을 만들어 도는 것을 4석이라 하며, 그다음은 역으로 4석에서 3석, 2석 그리고 하나의 원이 되어 다음 굿거리로 연속되는 연희를 준비한다. 이때 진 굿과 물레 굿이 비슷한 것으로 보이나, 진굿은 원을 따라 돌고 물레 굿은 각 단위별로 조를 이루어 도는 것이 다르다.

7. 농사 굿[논 서르기, 씨뿌리기]

농사짓는 형용을 하는 것으로, 주로 상쇠의 지휘를 받아 상모돌리기를 한다. 농사 굿은 원형에서 상쇠를 따라 도열하며 시작된다.

8. 모내기 굿(줄서기)

모내기 굿 과정에서는 아래의 차산 농요가 삽입된다.

「모내기 굿 노래」

바다야 같은 이 모구자리/ 장기판마치나마 하고나/ 장기알 바네사 두달 만에/ 둘이 없어서 몬 도으겠네

「모 찌면서 하는 노래」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가 열매 열래/ 이달 커고 훗달 커고/ 칠팔월에 열매 열지

「모심으면서 하는 노래」

서 마지기 이 논에서/ 모를 심어서 장가갈레라/ 우리야 부모님 산소 덕에/ 솔을 심어서 장가가로다/ 이 산 저 산 양 산 중에/ 울고 가는 두견새야/ 거지야 봉산 어데두 고/ 야산 중에서 슬피 우노

「저녁에 부르는 노래」

해가 졌네 해가 졌네/ 앞산방에 해가 졌네/ 방긋방실 웃는 날에/ 못 가 보고서 해가 졌네/ 오늘 해가 다 졌는데/ 산골마다 연기 난다/ 우리야 부모님은 어데 가고/ 연기 낼 줄 모르던가

9. 김매기 굿[논매기]

김매기 굿과 다음으로 이어지는 타작 굿[밭들기]까지는 상모 팀이 주축으로 연행한다. 이때 여러 가지 농사짓는 형용을 연출하는데, 씨뿌리기, 모찌기,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타작, 벼 끌어 모으기, 풍로 부치기, 가마니 쌓기가 행하여진다. 농작을 상징하는 이러한 형용은 다가오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김매기 굿이 끝나면 장고 놀이, 북놀이, 12발 상모놀이 등이 행하여진다.

10. 조름 굿[판 굿]

차산 농악 의 절정 부분이다. 벼 가마를 모두 모아 두고 농사의 풍작을 기뻐하며 벌이는 굿이다. 쇠를 신이 나도록 빠르게 친다.

11. 오방 굿[뚤뚤 말기]

1년 농사를 다 모아 두고 천왕을 배불리 먹이고 섬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천왕기와 농기, 태평소, 나팔을 중앙에 둔다.

[차산 농악의 전승자들]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4호 청도 차산 농악의 첫 번째 예능 보유자는 김오동[1922∼2002]이다. 김오동은 1922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꽹과리 등 농악기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김오동은 형 김시동으로부터 쇠가락을 전수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김시동은 차산리에서 살다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1957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시동은 당시 차산리천왕기 싸움에서 경쟁 상대이던 술개라는 상쇠에게서 상당한 기량을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개는 1895년부터 1940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김오동은 1957년 부산 전국 농악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개인상을 수상한 뒤 1979년 12월 제20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농악 부문 문화공보부 장관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15회가 넘는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또 예능 보유자로서 청도 차산 농악을 유지·발전시킨 공로자일 뿐만 아니라, 근 50년 동안 전생을 농악에 바쳐 온 상쇠의 명수였다. 김오동은 농악뿐만 아니라 민요 부문의 명창이기도 하였다. 김오동이 이끄는 민요 팀은 1983년 전국 민속 경연 대회에서 문화 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청도 차산 농악 의 전승자로는 김오동과 함께 농악대를 이끈 박용희[북], 백용만[북], 최정덕[징]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최초 보유자 김오동이 사망한 뒤 박영수[1937∼2004]가 예능 보유자로 승계하였으나, 박영수가 사망한 뒤로는 현재까지 보유자가 없이 50여 명의 회원을 둔 보존회[회장 김상권, 62세]를 중심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는 무형 문화재 전수 교육 조교 김태훈[1968년생, 남, 상쇠], 백진환[1968년생, 남, 상쇠], 조일환[1969년생, 남, 북], 박준오[1969년생, 남, 상쇠], 변은경[1970년생, 여, 장구] 등이 청도 차산 농악의 전승에 주축이 되어 계승하고 있다.

[차산 농악 전수를 위한 노력들]

차산리에는 청도 차산 농악 전수관이 1993년 8월 개관된 후 차산 농악을 전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청도 차산 농악 전수관은 1993년 8월 부지 2,056㎡에 건평 126㎡으로 지상 1층씩 2동이 건립되었다. 기와를 얹어 차산리의 전통적인 환경에 조화가 되도록 조성하였다. 전수관에는 1987년 김오동에게 차산 농악 상쇠를 사사받은 김태훈을 비롯해 조일환, 백진환, 박준오, 변은경이 거주하며 차산 농악을 전수하고 있다.

이외에도 차산 농악 보존회에서는 약 25명의 전수 회원들이 꾸준한 연습과 연구 를 통해 정기적으로 공연을 시행하고, 각종 행사 및 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차산 농악 보존회는 정기적으로 2월 청도천에서 개최되는 정월 대보름 행사를 시작하여 청도 소싸움 축제 식전 행사에서 공연을 개최한다. 이뿐 아니라 7∼8월에는 대학생 하계 연수를 정기 행사로 실시하여 차산 농악을 전수하고 있다. 9월 청도 반시 축제에서도 공연을 펼치고, 다시 12월과 이듬해 2월에 대학생 동계 연수를 통해 전수를 실시한다. 2012년 정기 공연은 9월 15일 풍각면사무소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이날은 청도 전자 고등학교 학생들이 청도 차산 농악을 전수받아 발표회에 함께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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