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굉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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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청도 향교의 학도들에게 내린 한시. 「권시청도학자(勸示淸道學者)」는 조선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 지은 한시이다.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각 지역 향교의 학도들을 권면하기 위해 지은 시 가운데, 청도의 학도들에게 내린 시이다. 칠언 절구로, 운자는 ‘심(心)’, ‘심(尋)’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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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의 복위 문제를 둘러싸고 훈구파와 사림파가 탄압을 받은 사건. 갑자사화는 1504년(연산군 10)[갑자년]에 훈구파와 사림파 중심의 부중(府中)으로 세력이 궁중(宮中) 세력에게 받은 정치적인 탄압 사건이다.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위 사건과 사사 사건을 임사홍(任士洪)의 밀고로 연산군이 알게 되면서 촉발되었으나, 조정 신하들 간의 암투로 격화되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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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김일손은 청도 출신 중에서 후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하나이다. 1498년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사형을 당하였다. 김일손의 죽음은 김해 김씨 일족뿐만 아니라 지역 인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청도 지역에 16세기 이후 은거의 풍토가 유행하는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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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강 서원에 소장된 조선 시대 고문서 일괄. ① 유학 박사신 교지(幼學朴思臣敎旨) : 1790년 9월 11일 진사시에 합격하여 발급받은 교지이다. ② 유학 박이탄 교지(幼學朴履坦敎旨) : 1828년 4월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발급받은 교지이다. ③ 도동음묵(桃洞音墨) : 편지를 모은 첩이다. ④ 선조유묵(先祖遺墨) :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157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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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남강 서원에 소장된 조선 시대 전적.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남강 서원은 1691년(숙종 17)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창건 당시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1572∼1652]을 봉안하였고, 23년 뒤에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1459∼1504]를 추향하였다. 박수춘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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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각북면 서북쪽에 있는 남산리는 소말과 남산, 낙성[가말] 등의 자연 마을이 합쳐진 마을이다. 소말은 인근 마을에 비해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소(小) 마을, 작은 마을을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소리(小里) 또는 소촌(小村)이라고 적고 소말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남산이란 이름은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이 이 마을에 살면서 마을 앞산이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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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金寶)를 시조로 하고 김덕유(金德裕)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서흥 김씨(瑞興金氏) 시조 김보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6대손으로, 고려 명종(明宗) 때 사람이다. 손자인 김천록(金天祿)이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1280년(충렬왕 7)에 왕으로부터 서흥군(瑞興君)으로 봉군(封君)된 뒤, 서흥을 본관으로 삼고 할아버지 김보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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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강 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유현들의 유필을 새긴 판목. 조선 후기 영남 지역에서는 문집 간행이 성행하였는데, 밀양 박씨 문중에서도 가문의 선양(宣揚)을 위한 작업을 일환으로 유묵의 판각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목은 영남 지역 양반 사족들의 가문 선양의 구체적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한편 이 『선현 유묵(先賢 遺墨)』은 172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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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청도 향교에서 장화식에게 발급한 망기. 석전제(釋奠祭)는 석전대제(釋奠大祭)·석채(釋菜)·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하며, 성균관의 문묘와 향교의 대성전에 위패를 모신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을 제사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대성전에 모시는 위패의 수는 고을의 크기, 즉 읍격(邑格)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청도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4성[안자(顔子), 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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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부모의 상을 당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 군위 현감을 시작으로 사간원 헌납·사헌부 지평·공조 정랑 등을 역임하며 탄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해로 귀양가기도 하였으나 중종반정 때 해배되어 다시 관직에 기용되었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심원(深源), 호는 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