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제청덕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2012
한자 題淸德樓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상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배경 지역 청도읍성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전록생

[정의]

고려 후기와 조선 시대 청도읍성 청덕루를 소재로 지은 한시들.

[개설]

「제청덕루」청도읍성 내에 있는 청덕루에 올라 그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청덕루(淸德樓)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시대 지군(知郡) 최안을(崔安乙)이 세우고, 최원우(崔元祐)가 기문(記文)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 이중경[李重慶]이 편집한 『오산지』에 의하면 청덕루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가 청도 군수를 지낸 권일(權佾)[1608∼?]이 1674년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권일은 여말 선초에 활동한 문신 권근(權近)의 후손이다.

『오산지』를 비롯한 『청도 군지』와 다른 문집에는 전록생이 지은 「청덕루」 외에도 청덕루와 관련된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청도 군지』에는 이첨(李詹)[1345∼1405], 하륜(河崙)[1347∼1416], 권근[1352∼1409], 서거정(徐居正)[1420∼1488], 심효생(沈孝生)[1349∼1398], 정이오(鄭以吾)[1347∼1434], 이언적(李彦迪)[1491∼1553], 이주(李冑)[1468∼1504]의 시가 전한다.

[구성]

전록생이 지은 「청덕루」와 권근의 「청덕루」는 모두 5언 율시(五言律詩)이며, 운자는 ‘두(頭)’, ‘추(秋)’, ‘부(浮)’, ‘후(侯)’이다.

[내용]

청덕루를 읊은 시의 대부분은 청덕루 주위의 풍광과 감회를 읊고 있다. 전록생과 권근의 시를 통해 청덕루가 어떠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시도 주제 의식에서 큰 차이가 없다. 전록생의 「청덕루」는 다음과 같다.

해우숭강저(廨宇崇岡底)[언덕 아래 높다란 관아]

위루압상두(危樓壓上頭)[높은 누각 꼭대기를 눌렀네]

반공유평지(半空有平地)[반공에 평지가 있어]

염하사량추(炎夏似凉秋)[더운 여름에도 서늘한 가을 같네]

민력원무차(民力元無借)[백성의 힘 원래 빌리지 않았으니]

누명과불부(樓名果不浮)[누각의 이름 과연 허튼 말 아닐세]

하수론사경(何須論四景)[굳이 사방 경치 말할 것 있나]

청덕설최후(淸德說崔侯)[청덕이란 이름 최후를 설명해 주네]

수련[1∼2구]은 청덕루의 입지(立地)를 드러내는데, 관아는 언덕 아래에 있고 꼭대기에는 웅장한 청덕루가 펼쳐져 있다고 하였다. 함련[3∼4구]은 더운 여름날 청덕루에 올라섰을 때의 청량(淸凉)한 느낌을 묘사하였다. 경련[5∼6구]과 미련[7∼8구]은 청덕이란 누각의 이름에 걸맞게 백성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것과 최후(崔侯)가 덕으로 고을을 다스렸음을 드러내었다. 즉, 청덕루를 선정(善政)의 상징적 공간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수련과 함련은 ‘청(淸)’을, 경련과 미련은 ‘덕(德)’을 교묘하게 배치시켜 묘사하고 있다.

한편, 양촌(陽村) 권근도 청덕루에 올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일모등루객(日暮登樓客)[해 질 무렵 누각에 오른 나그네]

차타욕백두(蹉跎欲白頭)[뜻을 이루지 못한 채 늙어만 가네]

수풍여송우(樹風如送雨)[나무에 부는 바람, 비를 보낼 듯]

맥기이생추(麥氣已生秋)[보리는 벌써 누렇게 익어 가네]

읍고곤령수(邑古坤靈秀)[옛 고을 땅의 정기 빼어나고]

산횡대색부(山橫黛色浮)[빗긴 산 검푸른 빛 띠었구나]

유리환득소(流離還得所)[떠돌다 다시 머물 곳 찾았으니]

청안유현후(靑眼有賢侯)[반겨 주는 어진 사또가 있다네]

권근이 김해로 귀향하면서 잠시 청덕루에 올라 지은 시로 일모(日暮)·객(客)·차타(蹉跎)·백두(白頭)·풍우(風雨)·유리(流離) 등의 시어를 통해 귀향을 가는 자신의 서글픈 신세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권근의 신세와 시어들이 빗어 내는 어두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비감(悲感)의 정조로 흐르지 않는 것은 누렇게 익어 가는 가을 벌판의 곡식처럼 백성들에게 넉넉하게 청덕(淸德)을 베푸는 어진 사또가 자신을 정답게 맞아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특징]

청덕루와 관련된 시는 모두 전록생의 시를 차운하여 지어진 것이다.

[의의와 평가]

전록생·심효생·권근·정이오 등 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을 중심으로 많은 시가 전해진다. 전반적으로 모든 시가 고을의 맑고 빼어난 경치[淸]와 사또의 인자한 덕(德)을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청덕루가 맑은 기운과 선정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