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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840
한자 木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정월 대보름날[음력 1월 15일]
신당/신체 당목|도당목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정월 초 당산나무에 지내는 제사.

[개설]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이나 대보름날[음력 1월 15일] 아침에 오색 헝겊이나 백지를 네모나게 잘라서 왼쪽으로 꼰 새끼줄에 끼워서 동구 밖 큰 나무에 걸어 두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곳에 따라서는 유사(有司)와 제관(祭官)을 따로 뽑아서 정월 초이튿날[음력 1월 2일] 또는 열나흗날[음력 1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곳도 있다.

[연원 및 변천]

목신제 는 거목 신앙으로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청도 지역에서는 고을마다 행하던 풍습이었다. 새마을 사업을 하고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민속을 미신(迷信)이라 하여 배타적으로 대하다 보니 사람의 성향이 차츰차츰 개인주의로 바뀌면서 공동체 의식이 점점 옅어지면서 거목 신앙도 없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목신제 는 원시 자연신 숭배의 하나로, 나무가 신령을 상징하는 신성한 물체로 숭배를 받는다. 거목 숭배는 단군 신화에서도 나타날 만큼 오래된 것이다. 실제로 전국의 각 지역에 존재하는 큰 고목나무는 대부분 당목(堂木) 또는 도당목(都堂木)으로 불리며, 신령이 깃드는 나무인 신수(神樹)로 여겨서 동민들이 치성(致誠)을 올리는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신수는 함부로 베는 것도 금기시되고 그 계율을 어기면 신이 내리는 벌인 신벌(神罰)을 받는 것으로 여겨져 오고 있었다.

[절차]

제사의 절차는 대부분 기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하고 축문을 읽는 지역과 읽지 않는 지역이 있지만 표준은 없다. 제사에 밥을 쓰지 않기 때문에 탕도 사용하지 않고 나물도 올리지 않는다.

[축문]

다음은 청도 지역의 목신제에 쓰이는 축문 중 하나이다. 마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은 있지만 대개는 다음과 비슷하다. □로 표시된 부분은 제를 지내는 일시의 간지, 마을과 제관의 이름 등이다.

“유세차 □□ 정월 □□ 삭 십오일 □□(維歲次 □□正月□□朔 十五日□□)/ □□동민 대표□□(□□洞民代表□□)/ 감소고우(敢昭古于)/ 고목지신 복유존신 대천선화 진아일방(古木之神 伏惟尊神 代天宣化 鎭我一方)/ 민유지조 사안이락 유신지사 사포이유(民有之造 使安而樂 惟神之賜 使飽而有)/ 유신지우 도민지덕 가민혜택 일리동속(惟神之佑 導民至德 加民惠澤 一里同屬)/ 유월지정 특주수부 식출미성 유신강격(惟月之正 特酒雖簿 寔出微誠 惟神降格)/ 서감우애 망수묵우 극유지종 상향(庶鑑愚哀 望垂墨佑 克乳之終 尙饗).”

[부대 행사]

현대인들은 목신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목신제를 지내는 곳도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열나흗날 밤중에 제관들만 참석하여 제를 모시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청도 지역에는 최근 들어 그나마도 모시는 곳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예전에는 목신제(木神祭) 또는 당산제(堂山祭)를 낮에 지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를 지내고 축원하고 나면 모두 함께 음복도 하면서 잔치 분위기를 띄워서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며 한바탕 흥겹게 노는 곳이 많았다.

[현황]

청도 지역에는 아직도 마을마다 입구에 큰 나무가 많이 있다. 특히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면 날짜는 달리하더라도 해마다 정월이면 금구를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을 씻고는 마을 유사를 뽑아 목신제를 올리는 곳이 많았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한밤중에 남몰래 음식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목신제 풍속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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