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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434
한자 -運動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시작된 1970∼1980년대 생활 환경의 개선과 소득 증대를 도모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 운동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그 이념으로 하고 있다. 그 이념에 부합가기 위한 실천 원리이자 행동 철학이 바로 새마을 정신이다. 근면(勤勉)·자조(自助)·협동(協同)의 새마을 운동은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며 사회 혁신 운동이다. 따라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은 국민 개개의 생활 향상과 자유로운 성장,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중흥을 이룩하려는 시대적 이념인 조국 근대화의 이념과 일치하였다.

새마을 운동은 농촌의 근대화와 지역의 균형 발전, 의식 개혁을 목표로 하였다. 따라서 새마을 운동의 기본 방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 각자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 공동체 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 개발, 공동 발전을 위해 협동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 지역 사회 주민이 주체가 되는 민간 주도의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셋째, 지역 사회 개발 운동에서 나아가 국민정신을 일깨우는 의식 개혁 운동이자 생활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전개 과정]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 한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지방 장관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하여 시작되었다. 현재 저개발국에 새마을 운동을 보급하여 새마을 운동의 종주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은 1970년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 보자’는 농어촌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1974년 도시 새마을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80년대 새마을 운동은 국민운동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에 따라 국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정신적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90년대에는 건강한 사회 건설을 위한 국민 의식 개혁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리하여 1992년부터 추진된 살기 좋은 고장 가꾸기 사례 교환을 위한 한일 국제 교류 대회, 러시아 연해주 농업협력 사업, 베트남 새마을 협력 사업 등을 계기로 해외 현지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 사업을 추진하여 대북 지원 사업에도 동참하였다.

현재 새마을 운동은 러시아·베트남·필리핀을 비롯하여 중국·몽골·스리랑카·캄보디아·네팔·콩고 민주 공화국 등 저개발 국가에 보급되어, 새마을 운동의 종주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청도군 새마을 운동 전개 과정]

1. 새마을 운동의 전단계[1955∼1969년]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나 1950년대부터 ‘마을 가꾸기 사업’·‘잘살기 운동’ 등이 청도군에서 시작되었다. 청도군 화양면 합천리의 장복주는 6·25 전쟁 이후 귀향하여 1955년부터 합천리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영농 개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의 김봉영은 1957년부터 신도 마을 주민들과 잘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홍영기는 1960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여 귀향한 뒤 국민 재건 운동 지도자를 자처하며 새 농촌 운동을 시작하였다.

2. 새마을 운동의 기반 조성기[1970∼1973년]

1970년 본격적으로 전개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 마을이다. 1969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은 경남 수해 지역 시찰을 위해 전용 열차를 타고 부산 방면으로 가던 중 신도 마을의 주민들이 마을 안길과 제방을 복구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에서 내려 이 마을을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리하여 1970년 4월 22일 한해 대책 지방 장관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 보자’는 새마을 운동을 제창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새마을 운동의 시작과 더불어 청도 지역은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70년 7월∼8월 문화 공보부에서 국토 보존[자조의 마을]의 영상이 신도 마을에서 촬영되었다. 1970년 7월 24일 대통령 비서실은 ‘경북 청도읍 신도동은 자력 개발의 의욕이 왕성하여 마을을 잘 가꾸고 충실하게 잘사는 마을로 전국에 시범이 될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천명하였고, 신도동과 그 주변을 국토 보존 사업의 시범 지구로 조성하기로 하였다.

청도군의 대표적인 새마을 운동 사례는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의 지붕 개량 사업과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의 운경 회관 완공이었다. 이리하여 전국 각처에서 신도 마을 견학이 이루어졌다. 1972년 3월 24일 박정희 대통령의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방문으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로서 청도군의 위상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3. 새마을 운동의 확산기[1974∼1976년]

새마을 운동의 기본 이념인 근면·자조·협동의 지속적인 전개와 자율적인 참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1974년 이후 청도 지역의 새마을 운동은 생산 기반 시설, 농업용수 시설, 마을 안길 확장, 소교량, 마을 세천 정리, 공동 이용 시설 등을 다수 확충하였다.

4. 새마을 운동의 심화기[1977∼1979년]

새마을 운동이 민간 주도로 추진되어 농어촌은 주택 개량·문화 시설 확충 등 복지 기반 확대를 목표로 하였고, 도시는 명랑하고 건전한 도시 환경 조성과 사회 윤리의 확립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공장은 원만한 노사 협조 체제를 목표로 하였다. 농촌 지역인 청도 지역은 새마을 회관 및 복지 회관 건립, 농로 확장 및 소하천 석축 등 새마을 기반 조성 사업을 광범하게 추진하여 1979년 새마을 운동 실적 총열 최우수 군으로 내무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였다.

5. 새마을 운동의 체제 정비기[1980∼1989년]

농어촌 환경 개선·소득 증대 등 외형적인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둔 새마을 운동을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운동으로 전착 발전시킨 시기였다. 1980년 12월 새마을 운동 중앙 본부가 발족되어 그 동안 정부에서 추진해 오던 업무 중 민간 부문의 새마을 업무를 이양 받았다. 청도군의 경우에도 민간 주도의 새마을 운동 기반 마련의 일환으로 1980년부터 주택 개량 및 취락 구조 사업, 소도읍 가꾸기 사업 등을 추진하였다.

6. 새마을 운동의 자율 확대기[1990∼1998년]

새마을 운동은 1989년 4월 24일에 새마을 운동 중앙 본부가 새마을 운동 중앙 협의회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조직과 체계를 정비하였다. 그동안 새마을 운동의 추진성과를 바탕으로 국민 의식 개혁 운동, 환경 보전 운동, 농어촌 가꾸기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청도군의 경우에는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로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견학의 발길이 이어져 국민 의식 개혁에 앞장서게 되었고, 지역 개발 운동과 환경 보전 운동을 통한 지역 경제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97년 말의 외환 위기를 맞이하여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 의식 개혁과 사회 풍토의 건전화에 노력하였다.

[청도군 새마을 운동의 현황(1999∼2012년)]

1998년 12월 8일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에서 새마을 지도자들은 ‘제2의 새마을 운동’을 천명하였다. 제2의 새마을 운동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운동을 지향한다는 이념으로 경제난 극복과 공동체 사회 구현을 목표”로 하였다. 그 실천 원리는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이며, 그 성격과 방향은 “나라 살리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건설,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 실현, 민족 통일 준비, 공생 공명의 세계화 운동” 등에 두었다.

청도군의 경우에도 ‘제2의 새마을 운동’에 발맞추어 1999년 환경 가꾸기 사업 등을 통해 군민 의식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2002년 제8회 늘 푸름 환경 대상 단체 우수상, 2005년 이후 경상북도 새마을 운동 종합 평가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여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특히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 신도 마을은 ‘새마을 운동의 메카’로써 전국 각지에서 견학단이 다녀갔으며, 2009년 4월에는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을 개관하여 새마을 운동의 성과를 조명하고 국민 정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한편 2007년 2월에 이른바 ‘새마을 원조(元祖) 논쟁’이 대두되었다. 청도군과 포항시 간에 빚어진 새마을 발상지 논란에서 2009년 4월 청도군의 주장이 타당한 것으로 인정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동시에 ‘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나아가 청도군은 2009년 9월 ‘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하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마을 운동이 세계의 성공 모델로 주목받으면서 중국과 베트남, 몽골 등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신도 마을을 찾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70년에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 보자’는 농어촌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도시 새마을 운동으로까지 전개되었다. 청도군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로서 이 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명실공히 새마을 운동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논쟁을 극복하고, ‘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 기념관’의 건립과 ‘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함으로써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서 청도군의 위상은 한층 확고하게 되었고, 새마을 운동의 성공 모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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