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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41
한자 朴孝秀
이칭/별칭 인암(忍庵)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박효수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박효수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1월 - 박효수의 장례가 유림장으로 거행
출생지 박효수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지도보기
묘소|단소 박효수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자양산 고사곡 선영지도보기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밀양

[정의]

현대 경상북도 청도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인암(忍庵). 아버지인 밀직 부사 자초(紫樵) 박정곤(朴珽坤)과 의흥 예씨 예대주의 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 영남 지역에서 노론 세력을 영도한 경양재(景陽齋) 박태고(朴太古)죽옹(竹翁) 박중채(朴重采)가 8대조와 7대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대로 기호 학맥을 계승한 집안이다.

[활동 사항]

박효수(朴孝秀)[1906∼1996]는 가문은 물론이고, 사승과 교유 관계 역시 기호 학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20세 때에 청도에서 기호 학맥을 계승한 덕천 성기운(成璣運)에게 수학했고, 이후 극제 송병관(宋炳瓘)에게 수학하였다. 그 뒤 청도군 이서면에 학음정(鶴陰亭)이라는 서당을 열고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박효수가 죽은 다음해인 1997년 1월, 장례가 유림장(儒林葬)으로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생가에서 거행되었다. 박효수의 장례는 20세기 영남 지역 기호 학맥 계승자의 마지막 유림장으로서,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박효수의 유림장은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원칙을 철저히 고증한 장례라는 평가를 받아 장례 문화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학문과 저술]

저서인 『인암집』 21책이 남아 있다. 박효수는 『소학(小學)』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고, 『주서(朱書)』를 작문(作文)의 근간으로 삼았다. 평생 효(孝)의 실천에 매진했고, 임종 시에도 효제(孝悌)를 유언으로 남길 정도였다고 한다. 「간서 잡록(看書雜錄)」과 『가례 증해(家禮增解)』를 읽고 손수 베끼고 줄여 쓴 「가례 증해 간초록(家禮增解簡抄錄)」 등에서 학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자양산(紫陽山) 고사곡(高師谷) 선영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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