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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09
한자 朴翊
이칭/별칭 천익(天翊),태시(太始),송은(松隱),충숙(忠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32년연표보기 - 박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86년 - 박익 동경 판관 겸 권농 방어사가 됨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박익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 귀은제에 은거
활동 시기/일시 1396년 - 박익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음
몰년 시기/일시 1398년연표보기 - 박익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37년 - 『송은집』 간행
출생지 박익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시
거주|이주지 박익 거주지 - 개성특급시
거주|이주지 박익 낙향지 - 경상남도 밀양시
묘소|단소 박익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사당|배향지 용강사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사당|배향지 신계 서원 -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사당|배향지 덕남 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 동경 판관 겸 권농방어사

[정의]

고려 말 후손이 청도로 이주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천익(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판도 판서(版圖判書) 박영균(朴永均)의 아들이며, 모친은 능주 구씨(綾州具氏)로 좌정승 구위(具褘)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익(朴翊)[1332∼1398]은 고려의 신하로서 1386년(우왕 12) 동경(東京) 판관(判官) 재직 중 권농 방어사를 겸했다. 그 후 사재 소감(司宰少監)·예부 시랑(禮部侍郞)·중서령(中書令)·세자 이사(世子貳師) 등의 벼슬을 지내고,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우왕·창왕 때에 정치가 어지러워 동생 박천경과 함께 밀양으로 낙향하여 정몽주·이색과 교류하다 다시 상경하여 예조 판서를 역임했다.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杜門洞)의 귀은제(歸隱第)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조 판서·형조 판서·예조 판서·이조 판서 등에 제수되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에 다시 좌의정에 임명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거주지 뒤의 산을 송악(松岳), 마을을 송계(松溪), 호를 송은(松隱), 집을 송암(松庵)이라 하였듯이, 은거 생활 중에서도 송경(松京)을 동경하다 생을 마쳤다.

박익의 아들 박융이 이후 탁영 김일손이 청도 고을 교수직으로 있을 때 향교 중수에 힘썼다. 또한 손자 소고(嘯皐) 박건(朴乾)이 당시 청도 지역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병조 판서 김철성(金哲誠) 가문과 혼인하면서 밀양에서 청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박건은 청도 지역의 밀양 박씨 소고공파의 입향조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포은 정몽주와 도의로 교유했으며, 『송은집』이 있다.

[묘소]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좌의정에 추증되고 충숙(忠肅)이라는 시호가 내렸으며, 밀양 덕남 서원(德南書院)과 산청 신계 서원(新溪書院), 청도 용강사(龍岡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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