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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971
한자 裵應褧
이칭/별칭 회보(晦甫),안촌(安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4년연표보기 - 배응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6년 - 배응경 식년 문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3년연표보기 - 배응경 청도 군수에서 이임
활동 시기/일시 1595년 - 배응경 순천 부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배응경 나주 목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01년 - 배응경 대구 부사로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배응경 사망
거주|이주지 배응경 이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성산
대표 관직 목사

[정의]

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배응경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 의병들과 함께 청도를 수복하는 전과를 올렸다.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회보(晦甫), 호는 안촌(安村). 할아버지는 증 형조 참의 배유(裵裕)이고, 아버지는 훈도(訓導) 배무선(裵茂先)이다. 어머니는 서산 정씨(瑞山鄭氏)로 제릉 참봉(齊陵參奉) 희장(希章)의 딸이다.

[활동 상황]

배응경(裵應褧)[1544∼1602]은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6년(선조 9)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랑을 거쳐 청도 군수로 재직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정산(最頂山)으로 피신하였으나, 향내의 의병장 박경전(朴慶傳)의 도움으로 청도 수복의 전과를 올렸다. 이때의 전공으로 뒤에 통정 대부로 승진하였다.

1595년(선조 28) 순천 부사가 되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의 천거로 나주 목사가 되어 금산을 수비하였다. 이때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요청으로 후퇴하는 적의 퇴로를 막아 물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감사 황신(黃愼)의 무고로 투옥되었다가, 우찬성 심희수(沈喜壽)와 부마(駙馬) 서경주(徐景霌) 등의 상소로 곧 석방되었다. 1601년 대구부사가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사직하였다.

[학문과 저술]

만년에 영천(榮川)에 머물며 김륵(金玏)·김우옹(金宇顒)과 『반야심경』을 강론하는 등 제현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냈다. 일찍이 유성룡과도 교유하였는데, 배응경의 박학함에 유성룡이 탄복하였다 한다. 저서로는 『안촌집』이 있다.

[상훈과 추모]

예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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