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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958
한자 琴儀
이칭/별칭 절지(節之),영렬(英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153년연표보기 - 금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184년 - 금의 과거에서 문과 장원을 함
활동 시기/일시 1208년 - 금의 우부승선으로 과거 주관
활동 시기/일시 1212년 - 금의 첨서추밀원사 좌산기상시 한림 학사 승지가 됨
활동 시기/일시 1215년 - 금의 수태위 중서시랑평장사가 됨
활동 시기/일시 1218년 - 금의 문하시랑평장사가 됨
활동 시기/일시 1220년 - 금의 벽상공신에 오름
몰년 시기/일시 1230년연표보기 - 금의 사망
출생지 금의 출생지 - 경기도 김포시[계양 김포현]
부임|활동지 청도 - 경상북도 청도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봉화
대표 관직 판이부사

[정의]

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문신.

[개설]

금의(琴儀)[1153∼1230]는 고려 후기 문신으로,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글을 잘 지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뒤 최충헌의 문사로 발탁되어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벽상공신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극의(克儀), 자는 절지(節之)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용식(琴容式)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금의는 생김새가 훤칠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젊어서 열심히 공부해 글을 잘 지었다. 과거를 보았으나 여러 번 낙방하고는 청도 감무로 나갔는데, 강직하여 뜻을 굽히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철태수(鐵太守)라고 불렀다. 1184년(명종 14)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내시(內侍)에 임명되었다. 최충헌(崔忠獻)이 문사를 구할 때 이종규(李宗揆)의 추천으로 발탁되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신종(神宗) 때 상서우승 우간의대부 태자찬선대부(尙書右丞右諫議大夫太子贊善大夫)로 임명되었다. 한때 장작감(將作監)으로 좌천되기도 하였으나, 1208년(희종 4) 우부승선으로 과거를 주관하였으며 곧이어 다시 좌간의대부가 되었고, 지주사(知奏事)와 지이부사(知吏部事) 등을 지냈다.

1212년 강종이 즉위하자 금나라에서 책봉사를 보내 왔는데, 이때 책봉사 접대에 공을 세워 첨서추밀원사 좌산기상시 한림 학사 승지(簽書樞密院事左散騎常侍翰林學士承旨)에 올랐다. 1215년(고종 2) 정당문학 수국사(政堂文學修國史), 수태위 중서시랑평장사(守太尉中書侍郎平章事)가 되었다가 1218년(고종 5)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임명되었다. 뒤이어 수태보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守太保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部事)가 되었으나, 1220년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청하자 벽상공신(壁上功臣)의 칭호를 더하여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학문과 저술]

문장에 뛰어나 『한림별곡』에는 금학사(琴學士)로 되어 있다. 여러 번 지공거가 되어 그 문하에서 명사(名士)가 많이 나왔으니, 세상에서는 이르기를 ‘금학사옥순문생(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영렬(英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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