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59
한자 南岡書院所藏典籍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남강 서원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 2리 525지도보기
간행처 남강 서원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 2리 525
성격 전적
저자 박수춘|주희|박한주|이황
권책 19책[10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남강 서원에 소장된 조선 시대 전적.

[개설]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남강 서원은 1691년(숙종 17)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창건 당시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1572∼1652]을 봉안하였고, 23년 뒤에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1459∼1504]를 추향하였다.

박수춘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인 무진재(無盡齋) 박신(朴愼)의 아들이다. 박신은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올랐고 후에 서학교수(西學敎授)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아들 박수춘과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 박수춘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교유하여 학문을 논하였다.

박한주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동문수학 하였다. 무오사화 당시 김종직의 문도로서 국정을 비판하였다 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평안도 벽동에 유배되었다. 이후 호남 낙안군으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최두산과 같은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갑자사화 당시 사사(死賜)되었다.

[저자]

남강 서원 소장 전적(南岡 書院 所藏 典籍) 10종의 편자와 저자를 모두 알 수는 없다. 확인 가능한 전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국담선생추선록』은 국담 박수춘이 엮은 것이다. 『오졸재선생실기』오졸재 박한주의 글들을 모아 엮었다. 이외에 서원의 교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아송』, 『주자대전』, 『자치통감강목』은 중국 남송의 학자인 주희(朱熹)가 저술한 것이며, 퇴계가 저술한 『퇴계선생문집』이 있다. 『동고유고』, 『만와유고』, 『밀성박씨파보』, 『서집전』의 편자와 저자는 알 수 없다.

[형태/서지]

1. 『국담선생추선록(菊潭先生追先錄)』은 박수춘이 편찬한 것으로, 1725년에 간행되었다. 목판본이며,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크기는 21.6×31.8㎝이다. 사주 단변(四周單邊)에 반광(半匡)의 크기는 17.1×22.8㎝이며, 10행 21자이다. 계선은 있으며, 상하 백구(上下白口)에 어미는 상하 내향 사판 화문 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魚尾)이다. 특이 사항으로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세계도(世系圖)가 있다. 형태는 선장(線裝)이고,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이외에 표제는 ‘국담 선생 추선록(菊潭先生追先錄)’이며, 서문은 상지 5년 갑오(上之五年甲午)[1654]에 윤순지(尹順之)가 지었고, 발문은 상지 원년 을사(上之元年乙巳)[1725]에 이광정(李光庭)이 지었다.

2. 『동고유고(東皐遺稿)』의 편자와 저자,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필사본 1책이며, 크기는 14.4×22.6㎝으로 반광은 10행 21자이다. 계선과 어미는 없으며, 선장의 형태에 재질은 저지이다. 표제는 ‘동고 유고(東皐遺稿)’라 되어 있다.

3. 『만와유고(晩臥遺稿)』의 편자와 저자,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필사본 1책이며, 크기는 21.8×32.7㎝이다. 반광은 17.7×25.4㎝이고, 10행 28자이다. 광곽은 사주 단변으로 경계선이 있고, 어미는 없다. 표지는 선장으로 되어 있고, 재질은 저지이다. 표제는 ‘만와 유고(晩臥遺稿)’라 쓰여 있고, 서문은 상지 즉위 20년 을묘(上之即位二十年乙卯)[1795]에 박경수가 작성하였다.

4. 『밀성박씨파보(密城朴氏派譜)』의 편자와 저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간기(刊記)에 ‘경자 4월 남강 서원 인간(庚子四月南崗書院印刊)’으로 되어 있어서, 경자년에 남강 서원에서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경자년은 남강 서원이 훼철되기 이전인 1840년으로 짐작된다.

형태 서지는 목활자본이며, 3권 2책의 완질이 남아 있다. 크기는 22.3×33.8㎝이며, 광곽은 사주 단변이다. 반광의 크기는 17.8×25.3㎝이고, 10행 22자로 계선이 있다. 상하 비선은 백구(白口)이고, 어미는 상하 내향 혼어미(上下內向混魚尾)이다. 특이 사항으로 주는 쌍행이며, 세계도가 삽입되어 있다. 재질은 저지이며, 형태는 선장이다. 표제는 ‘밀성 박씨 세보(密城朴氏世譜)’로, 권두제는 ‘밀성 박씨 파보(密城朴氏派譜)’로 적혀 있다.

5. 『서집전(書集傳)』의 편자와 저자,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필사본 1책으로 영본(零本)이다. 크기는 14.2×21.9㎝이며, 계선과 어미가 없다. 주는 쌍행이며, 재질은 저지, 형태는 선장이다. 표지는 표기가 없고, 권두제에 ‘서집전(書集傳)’이라 적혀 있다.

6. 『아송(雅誦)』은 주희가 편찬한 것으로,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목판본으로 8권 2책의 완질이다. 크기는 20.3×30.3㎝이며, 광곽은 사주 단변이다. 반광은 16.5×22.3㎝이고, 10행 18자이다. 계선이 있으며, 상하 비선은 상화 구하 백구(上花口下白口)이며, 어미는 상하 향사판 화문 어미(上下向四瓣花紋魚尾)이다. 주는 쌍행이며, 형태는 선장, 재질은 저지이다. 표제는 ‘아송(雅頌)’으로 되어 있고, 서문에 ‘권지시인재 15일……기미 9월 20유 4일야(卷之始印在十五日...己未九月二十有四日也)’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처음 인간(印刊)된 것이 기미년 9월임을 알 수 있다.

7. 『오졸재선생실기(迂拙齋先生實紀)』오졸재 박한주가 저술한 것으로,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판본은 석인본(石印本)으로 2권 1책의 완본이다. 크기는 18.8×28.3㎝이고, 광곽은 사주 쌍변이다. 반광의 크기는 14.7×20.3㎝에 10행 21자이다. 계선이 있으며, 상하 비선은 백구(白口), 어미는 상하 향사판 화문 어미, 주는 쌍행이다.

특이 사항으로 연보(年譜)가 그림으로 삽입되어 있다. 형태는 선장, 재질은 저지이다. 표제는 ‘오졸재 선생 실기(迂拙齋先生實紀)’이고, 판심제는 ‘오졸재 실기(迂拙齋實紀)’로 되어 있다. 이외에 수서각서(手書刻序)는 정종로(鄭宗魯)의 글이며, 발문은 박란서(朴蘭緖)가 지었다.

8.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주희가 편찬한 것으로,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목판본 1책으로 영본(零本)이다. 크기는 22.6×36.89㎝이며, 광곽은 사주 쌍변이다. 반광은 17.0×25.3㎝이고, 10행 18자이다. 계선이 있으며, 상하 비선은 백구, 어미는 상하 하향 흑어미(上下下向黑魚尾)이며, 주는 쌍행이다. 형태는 선장이고, 재질은 저지이다. 장서기(藏書記)가 있는데 ‘파산후인동계가장(巴山後人東溪家藏)’이라 적혀 있으며, 표제는 ‘강목(綱目)’, 권두제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다. 남강 서원 소장본은 권30 중∼하이다.

9. 『주자대전(朱子大全)』은 주희가 저술한 것으로,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목판본이며, 소장본은 권93부터 94까지의 1책으로 영본이다. 크기는 22.2×34.3㎝이며, 광곽은 사주 쌍변이다. 반광은 18.3×25.3㎝이고, 10행 22자이다. 계선이 있으며, 상하 비선은 상화 구하 백구(上花口下白口), 어미는 상하 향육 판화문 어미(上下向六瓣花紋魚尾)이며, 주는 쌍행이다. 형태는 선장이고, 재질은 저지이다. 표제는 ‘주자 대전(朱子大全) 권69(卷六十九)’라 되어 있다.

10.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은 이황이 저술한 글을 편집한 것으로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목판본으로, 남강 서원에는 모두 8책만이 남아 있는 영본이다. 크기는 21.6×31.6㎝이며, 광곽은 사주 단변이다. 반광은 16.4×20.2㎝이고, 10행 18자이다. 계선이 있으며, 상하 비선은 상화 구하 백구, 어미는 상하 내향 혼어미(上下內向混魚尾)이다. 주는 쌍행이며, 형태는 선장, 재질은 저지이다. 표제는 ‘퇴계집(退溪集)’이며, 권두제는 ‘퇴계 선생 문집(退溪先生文集)’이라 되어 있다. 현전하는 8책은 권3, 권9∼10, 권17∼18, 권29∼30, 권31∼32, 권35∼36, 권37∼38, 별집(別集) 등이다.

[구성/내용]

『국담선생추선록』은 국담 선생 추선록 서, 추선록 세계도, 추선록 세계사실(追先錄世系事實), 세계사실 서, 행산 선조 일고(杏山先祖逸稿)[시(詩): 복거음(卜居吟), 국사원화목암요수소암우집송설조맹부운(國史院和牧庵姚燧邵庵虞集松雪趙孟頫韻), 부제현유작(附諸賢遺作): 박행산댁유제(朴杏山宅有題), 송고려박학사(送高麗朴學士), 가군수연감군은작(家君壽宴感君恩作), 봉화주학사탁(奉和周學士倬), 원운(原韻), 근성고율봉정도은학사(謹成古律奉呈桃隱學士), 방박도은(訪朴桃隱)], 선공유고(先公遺稿)[시: 무진재희제(無盡齋戱題), 만오음(晩悟吟), 차퇴계선생한서암운(次退溪先生寒棲庵韻), 원운(原韻), 절우사차퇴계선생방매운(節友社次退溪先生訪梅韻), 차노선생운(次老先生韻), 원운(原韻), 무진대즉사(戊辰臺卽事), 사미정만흥(四美亭謾興), 차이귀암운정기고봉(次李龜巖韻呈奇高峰), 상퇴계선생서(上退溪先生書), 답기명언대승서(答奇明彦大升書), 제현유묵(諸賢遺墨), 부록(附錄): 증통훈대부군자감정행장사랑동몽교관무진재박선생묘도비명병서(贈通訓大夫軍資監正行將仕郞童蒙敎官無盡齋朴先生墓道碑銘幷序), 계문제자록무진재사적(溪門弟子錄無盡齋事蹟)], 국담 선생 추선록 발(菊潭先生追先錄跋)로 구성되어 있다.

『오졸재선생실기』는 2권 1책으로 서문은 정종로가 지었다. 권1은 연보, 부(賦) 3수[거동부(居東賦), 경회루부(慶會樓賦), 삼도부(三都賦)], 차자(箚子) 2수[청출임사홍등차자(請黜任士洪等箚子) 등], 기(記) 2수[폐현슬기(廢絃瑟記), 안전기(安全記)], 투증(投贈), 추감제편(追感諸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2는 부록[행장(行狀), 여표비명병서(閭表碑銘幷序) 3수, 언행척록(言行摭錄), 제선생묘문(祭先生墓文), 예림서원남강서원덕암서원봉안문(禮林書院南岡書院德巖書院奉安文), 예림 서원 이건 시고 유문(禮林書院移建時告喩文), 무오당적(戊午黨籍), 부무오화록(附戊午禍錄), 무오사화(戊午史禍), 이세영 일기(李世英日記), 제무오사화록후(題戊午史禍錄後), 류자광전(柳子光傳), 갑자화록(甲子禍錄), 무오당인신설소(戊午黨人伸雪疏), 교유문인록(交遊門人錄), 남강 서원 청액소(南岡書院請額疏), 차자(箚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남강 서원에 소장된 10종 19책의 문집, 족보, 성리서 등의 전적은 현재 전하는 것보다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1868년에 훼철된 이후 상당 부분이 산실(散失)된 것으로 짐작된다. 서원은 강학과 선현 봉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소장 전적은 당시 서원 교육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