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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50
한자 鰲山志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627년∼1673년 - 『오산지』 저술
편찬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1737년연표보기 - 『오산지』 편찬
성격 사찬 읍지
저자 이중경
권책 1책
규격 18.8㎝×27.7㎝

[정의]

조선 후기 청도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담은 사찬 읍지.

[개설]

『오산지(鰲山志)』는 청도의 재지 사족이던 이중경(李重慶)이 1673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당시에 편찬된 다른 사찬 읍지보다 편목이 다소 많은데, 이는 당시 청도의 재지 사족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찬 읍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저자]

이중경의 본관은 전의이며, 1599년 아버지 이기옥[1566∼1604]과 어머니 거제 반씨 사이에 태어났다. 자는 경숙(慶叔), 호는 수헌(壽軒)이다. 증조인 이흥지(李興智)가 당시 청도의 명유이던 박하담(朴河淡)의 사위가 되면서 경기도 시흥에서 청도로 이주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정여립 옥사에 연루되어 39세 일기로 사망하자 어린 이중경은 외가에 의탁되어 학문을 연마하는 데 힘썼다. 향리의 종장들과 도의로 교유하였고, 67세 되던 해에 청도 상북면 수여촌[지금의 수야리]에 수헌 정사를 은거지로 삼아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며 만년을 보내었다.

[편찬/간행 경위]

15세기에 중앙 집권적 양반 국가 수립을 위해 국가에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간행하였으나, 16세기 말부터는 고을 단위의 사찬 읍지들이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재지 사족들이 성장함에 따라 고유한 지방 문화를 정리하겠다는 의식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 사찬 읍지의 편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가 정구유성룡이다. 정구는 외임으로 간 부임지마다 읍지를 편찬하였고, 정구가 감수한 『영가지』는 1602년 유성룡이 낙향해 있을 때 문인 권기에게 명하여 편찬되었다. 『오산지』의 편찬 또한 1627년 유성룡의 아들 유진이 청도 군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아울러 편찬자 이중경의 아버지 이기옥정구의 문인이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오산지』는 경상도 인근 지역에서 이미 간행되었던 사찬 읍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성/내용]

18세기 이후 편찬된 읍지는 중앙에서 하달된 획일적 편목 요강에 따라 작성되었다.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이후 고종 대에 『청도군 읍지』가 몇 차례 간행되었지만, 편목이 거의 대동소이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비해 『오산지』는 목차, 표지, 서(序), 목록, 총론, 전고(典故), 발(跋)로 구성되어 있고, 향토 사정을 상술하려는 편목 설정이 많다는 특징을 보인다.

편목이 60개로 되어 있어, 당시 사찬 읍지 전형을 이루는 『함주지』나 『진양지』보다 약 20개 정도가 많다. 이것은 청도 지역 재지 사족을 영도하던 김해 김씨밀양 박씨 인물에 관한 것을 편목으로 잡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의의와 평가]

『오산지』는 어느 사찬 읍지보다 재지 사족을 전면에 내세우는 강한 특수성을 지닌다. 동시대에 편찬된 사찬 읍지인 『일선지』나 『단성지』도 인물을 중심으로 하되, 저마다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청도의 재지 사족들이 중심이 되어 정리된 『오산지』는 오늘날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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