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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채 준호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47
한자 李東采準戶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74년 3월연표보기 - 「이동채 준호구」 작성
성격 고문서|준호구
편자 청도군
행자 행자수 부정(行字數不定)

[정의]

1774년 경상도 청도군 하남면 고수리에 거주하고 있던 이동채가 청도군으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

[저자]

「이동채 준호구(李東采 準戶口)」의 발급자는 청도 군수이다. 이동채가 어떠한 필요로 준호구 발급을 청도군에 청하였고, 그 결과 1774년 3월 준호구를 발급받았다. 이동채는 본관이 경주, 직역(職役)은 유학(幼學), 1704년[갑신] 생으로 수급 당시 71세였다. 이동채가 거주하던 곳은 경상도 청도군 하남면 고수리[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6통 2호로 나타나 있는데, 지금까지 경주 이씨(慶州 李氏) 일문이 세거해 오고 있는 동리이다.

[편찬/간행 경위]

준호구는 관청에서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는 문서로 지금의 호적 등본과 비슷하다. 조선 시대 각 고을에는 호적 자료가 구비되어 있었으며, 고을민이 요청하면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는 준호구를 발급해 주었던 것이다. 어떤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호주(戶主) 이동채가 자신 또는 가족이 어떠한 공적인 일을 행사하는 데 신분을 증명하고자 1774년 3월 발급받은 듯하다. 준호구에는 호주의 나이, 직역, 거주지, 가족, 사조(四祖), 처의 사조(四祖), 노비 등이 기재되어 있다.

[형태/서지]

1매이며, 상하로 결락이 있다. 관서 인장 1개, 서압(署押) 1개가 확인된다.

[구성/내용]

가장 먼저 거주지, 호주 이동채의 직역, 성명, 출생 간지와 나이, 사조, 처와 처의 사조를 기재하였다. 이에 따르면 이동채의 아버지는 학생(學生) 이이민(李以民), 할아버지는 학생 이술원(李戌元), 증조할아버지는 노직(老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이오미(李五美), 외할아버지는 본관이 안동인 학생 권귀연(權貴連)이다. 처는 65세의 경산 전씨(慶山 全氏)로 나타난다. 다음에는 자식의 이름과 나이를 기재하였는데, 3남 1녀가 확인된다. 마지막에는 이동채가 노비 월선(月先)을 거느리고 있으며, 월단(月丹)이라는 도망간 노비도 있다고 명기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후반 청도 지역 사회 구성원의 존재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같은 시기의 동일 지역에서 작성된 호적 자료를 통해 다른 지역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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