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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777
한자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집필자 오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경상북도 청도군 탑 - 경상북도 청도군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주로 사찰에 속해 있는 불교 조형물.

[개설]

탑이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골을 봉안했던 인도의 스투파에서 유래된 것이다. 탑이라는 명칭도 스투파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인 탑파(塔婆)의 약칭이다.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토석을 쌓아올린 분묘로 인도의 산치에는 3기의 불탑이 남아 있다. 이 중 산치 1호 탑은 거대한 원분형으로 4대 탑문과 난간의 조각이 아름다우며 불탑의 시원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탑파는 불교가 전파되는 각 나라의 건축 기술과 재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발전되었다. 우리나라의 석탑은 7세기경 백제에서 발생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신라에서는 전탑 양식을 모방한 모전 석탑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석탑은 삼국 시대에 동·서에서 각기 다른 양식적 차이를 보이나 신라의 통일을 계기로 두 지역의 석탑 양식이 집약, 정돈되면서 탑파의 주류가 되었다.

청도 지역의 탑은 다른 지역에 있는 탑과 마찬가지로 사찰에 속해져 있는 탑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는 현재 사찰이 남아있는 곳에 있는 탑도 있고, 사찰은 사라지고 절터에만 남아 있는 탑,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서 있는 탑들도 있다. 청도 지역의 대표적인 탑에는 불령사 전탑, 청도 봉기리 삼층 석탑, 청도 덕양동 삼층 석탑, 청도 장연사지 동·서 삼층 석탑, 운문사 동·서 삼층 석탑, 대산사 석탑, 용천사 석탑, 박곡리 석탑 등이 있다. 또한 현재 석탑의 모습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부재 일부가 남아있는 동산리 석탑재 등도 있다.

[통일 신라의 석탑]

청도 지역에는 삼층 석탑이 많은데, 통일 신라 때 생겨난 석탑들이 대부분이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은 쌍탑식 가람 배치가 유행하여 경주 감은사지 삼층 석탑과 고선사지 삼층 석탑이 유명하다. 석탑의 전체적인 구조는 목조 건축의 각 부를 모방하여 석재로 구현함으로써 후대 한국 석탑 전형의 시원을 이루었다.

통일 신라 기의 석탑은 중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세부 양식이 생략되거나 간략화되고,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탑신과 옥개석을 각각 단일석으로 가공하거나 외관에 사천왕상, 십이지신상 등을 모각하여 섬세한 장식, 공예적인 요소가 발전하였다. 또한 추녀 끝과 옥개석 받침도 얇아지고 기단이 2중 기단에서 단층으로 축소되거나 옥개석과 기단 폭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청도 지역의 석탑도 이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통일 신라 기의 석탑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균형미와 힘차고 단아한 외관을 갖는다. 기단을 이중으로 한 것은 새로운 형식으로 이후 한국 석탑의 규범이 되었다. 청도 지역의 통일 신라 기 석탑으로는 불령사 전탑, 청도 봉기리 삼층 석탑, 청도 덕양동 삼층 석탑, 청도 장연사지 동·서 삼층 석탑, 대산사 석탑이 있다.

1. 불령사 전탑

불령사(佛靈寺) 대웅전 위 암반에 세워져 있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94호로 지정된 전탑이다. 3층으로 이중 기단에 상륜부까지 완전하며 체감율과 기단 형태 등, 양식적으로 전형적인 통일 신라 석탑을 보여준다. 석탑과 불상의 상륜부에는 구름무늬가 배치되어 여백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2. 청도 봉기리 삼층 석탑

청도 봉기리 삼층 석탑은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기단의 삼층 석탑으로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주며, 상하층 기단은 우주와 각 면 2개의 탱주를 새겼다. 원래는 쌍탑이었으나, 현재는 서탑만 남아 있다. 전체 높이 5.47m, 폭 3.57m의 화강암재 석탑이다.

3. 청도 덕양동 삼층 석탑

청도 덕양동 삼층 석탑은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층 기단은 매몰되어 있으며 상대 갑석에는 부연(副椽)이 있다. 상부에는 굄이 있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에는 양 우주가 있고, 옥개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덕양동 삼층 석탑은 높이 3.2m로 통일 신라 기의 전형적인 2층 기단 위에 삼층 석탑일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1층 기단은 없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현재 형태는 단층 기단에 3층 탑신부를 올린 형식이다.

4. 청도 장연사지 동·서 삼층 석탑

청도 장연사지 삼층 석탑은 보물 제677호로 지정된 통일 신라 석탑이다. 사찰의 이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장연사 또는 홍경사로 전해올 뿐 정확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절터 서편 동창천의 소(沼)를 장연(長淵)이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은 이중 기단에 삼층 탑으로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현재 동탑의 상륜부는 없어졌고 서탑에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탑의 높이는 동탑이 4.6m, 서탑이 4.84m이다.

5.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 석탑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 석탑은 운문사 비로전 앞에 있는 보물 제678호로 지정된 쌍탑이다. 동·서 탑 모두 5.4m로 두 탑의 규모와 양식이 거의 같다. 일제 강점기 때 기단부가 몹시 부서져 있어서 그것을 보수하면서 새로운 돌들을 많이 첨가되면서 세부적인 면이 많은 생략되었다.

탑은 이중 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전형 양식으로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위치해 있다. 동탑은 보수 과정에서 상·하층 기단 갑석, 서탑은 면석과 상륜의 일부가 신부대로 교체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곳에 보수의 흔적이 남아 있다.

6. 대산사 석탑

대산사 석탑각남면 옥산리 대산사 내에 있는 높이 2m의 삼층 석탑이다. 탑의 지대석(地臺石)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멧돼지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 시대의 석탑]

고려 시대의 석탑은 초기에는 신라 탑의 조형미가 흘러넘치는 과도한 장식적 표현과 과거의 신라 지역을 넘어선 전국적 조탑, 그리고 단출한 규모를 특징으로 하다가 후대에 가서는 약화(略化)되어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면서 특이한 이형의 탑도 상당히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려 시대의 석탑은 신라에 비해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되었으며, 개경·경주·충청·전라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그 지역의 독자적인 특색을 가진 탑들이 조성되었다. 청도 지역의 고려 시대 석탑은 용천사 석탑, 박곡리 석탑이 있다.

1. 용천사 석탑

용천사 석탑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용선사 대웅전 앞에 있는 작은 석탑이다. 붕괴되어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지대석을 비롯한 많은 부재들이 유실되어 지금은 1·2층 기단, 1층 탑신 및 1·2층 옥개석만 남아 있다.

형태는 낮은 1층 기단은 4매석으로 우주와 탱주 외에 8개의 인상이 표현되고 있고, 2층 기단은 한 돌로 우주와 탱주를 새겼다. 옥개석은 3단의 중급 받침에 처마의 하면은 수평으로 하고, 상면만 곡선으로 주었다. 규모가 작고 간략한 수법으로 보아 통일 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측된다.

2. 박곡리 석탑

박곡리 석탑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으로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 보호각 앞에 서 있다. 하층 기단 없이 상층 기단 받침석 위에 4매로 상층 기단 중석을 짜 맞추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렸다. 상층 기단 갑석에는 모두 3단의 옥개 받침을 두었고, 상단부에는 2단의 탑신 굄을 새겼다. 탑신부는 1층 몸돌만 남고 2·3층 몸돌은 없어졌으며 지붕돌은 1·2층만 남아 있다.

[조선 시대의 석탑]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자연히 불교 조형 미술이 위축되었고 무탑식 가람이 유행하면서 석탑의 건립도 위축되었다. 석탑은 고려 말의 조형미를 이어서 초기에는 방형 중층의 일반형 석탑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청도 지역에서는 조선 시대 양식의 석탑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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