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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51
한자 土製-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구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4년 6월 19일연표보기∼2004년 9월 30일연표보기 - 토제 다리미 발굴
현 소장처 국립 경주 박물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출토|발견지 토제 다리미 출토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성격 생활 용품
재질 점토
크기(높이,길이,너비) 송서리 돌덧널무덤 3호 토제 다리미 : 29.6㎝[전체 길이]|14.3㎝[입 지름]|4.8㎝[높이]|16.1㎝[자루 길이]|1.6~2㎝[자루 지름] 송서리 돌덧널무덤 16호 토제 다리미 : 31.3㎝[전체 길이]|13.9㎝[입 지름]|10.9㎝[바닥 지름]|5.3㎝[높이]|18.7㎝[자루 길이]
소유자 경주 국립 박물관
관리자 경주 국립 박물관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에서 출토한 삼국 시대의 토제 다리미.

[개설]

다리미는 열과 압력을 가하여 천이나 옷, 피혁 등의 구겨진 주름을 펴는 데 사용되는 기구로, 속에 숯불을 담아 달구었기 때문에 ‘울두(熨斗)’ 또는 ‘화두(火斗)’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대의 다리미는 청동으로 만든 것과 흙을 구워 만든 두 가지 재질의 것이 보이는데 송서리 돌덧널 무덤[石槨墓] 3호와 16호에서 출토한 것은 후자인 토제품이다. 청동 다리미의 예로는 서기 전후한 삼한 시대의 것으로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오래되었고, 삼국 시대의 것으로는 신라 고분인 천마총과 백제 고분인 무령왕릉 출토품 등이 있다. 그 형태는 대야처럼 운두가 낮고 전이 있으며, 한 쪽에는 자루가 달리는데 청동 다리미의 경우 몸통에 달린 청동 자루는 뜨거워서 손잡이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실제 손잡이 부분에 해당하는 절반의 길이는 다시 나무 자루를 끼워 조합한다. 그리고 아가리를 바깥으로 외반시켜 전을 형성한 것은 숯불을 담기 쉬울 뿐 아니라, 사용 중에 숱이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구조이다.

토제 다리미 가 나온 돌덧널무덤 3호와 16호는 공교롭게도 둘 다 송서리 고분군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강돌을 쌓아 만든 장축 동서 방향의 무덤으로 유물을 양단 부장하였는데, 두 무덤 모두 피장자의 발치 쪽이라고 여겨지는 서편의 부장구에서 토제 다리미가 나와 유물 부장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토제 다리미는 2004년 6월 19일~2004년 9월 30일 사이에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하였고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송서리 돌덧널 무덤 3호 토제 다리미는 전체 길이 29.6㎝, 입 지름 14.3㎝, 높이 4.8㎝, 자루 길이 16.1㎝, 자루 지름 1.6∼2㎝이다. 다리미 몸통은 운두가 낮은 토기 접시 거의 흡사한 형태이다. 따라서 저부가 둥글게 처리되었기 때문에 삼국 시대의 반반한 저부를 가진 청동 다리미들과 비교하면 형태상 차이가 난다. 자루 손잡이는 아가리 쪽의 외반된 전에서 저부 바로 위쪽에 이르는 기면 부위에 붙어 있는데, 끄트머리로 가면서 위쪽으로 살짝 치켜 들렸다. 그리고 손잡이 끝은 자른 것처럼 바깥쪽으로 경사지게 처리했다. 자루 끝에서 2.7㎝ 떨어진 지점에는 직경 5㎜가량의 작은 구멍[小孔]이 상하로 뚫려 있어 끈을 꿰어 고리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송서리 돌덧널 무덤 16호 토제 다리미는 전체 길이 31.3㎝, 입 지름 13.9㎝, 바닥 지름 10.9㎝, 높이 5.3㎝, 자루 길이18.7㎝이다. 돌덧널 무덤 3호 토제 다리미와 달리 다리미 몸통의 기벽이 거의 수직상으로 뻗어 올라 천마총에서 출토한 청동 다리미를 많이 닮았다. 기다란 막대 모양의 자루는 전의 아래쪽에서 내부 바닥선에 이르는 기면 부위에 붙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끄트머리 쪽으로 가면서 살짝 치켜 들렸다. 그리고 손잡이 끝부분은 약간 두툼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둥글게 처리했다. 자루 끝에는 2㎝ 떨어진 지점에 역시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는데 상하가 아니라 좌우로 관통시켰다.

[특징]

토제 다리미 2점 모두 사립이 함유된 점토를 태토로 사용하였으며, 연질 소성이다. 기본 색조는 3호 출토품이 회황색이고, 16호 출토품은 적갈색인데, 후자의 내면 바닥 일부는 흑갈색을 띤다. 제작 과정은 몸통과 자루를 각각 따로 성형한 뒤, 몸통에 구멍을 내고 자루를 끼워 점토로 보강하여 결합했다. 그리고 자루 손잡이는 길이 방향으로 깎기 조정하는 방법으로 마무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출토 예가 흔치 않은 삼국 시대의 토제 다리미로, 당시 생활 문화의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정식으로 조사된 유구와 더불어 같이 나온 공반 유물을 통해 편년이 가능할 뿐 아니라, 두 점이긴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형식 변천의 양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어 유물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돌덧널 무덤 3호에서는 재지계 굽다리 접시[창녕 양식]가, 돌덧널 무덤 16호에서는 신라계 굽다리 접시[경주 양식]가 동반되고 있어 서기 500년 이후 청도 산서 지역의 신라화 과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16호에서 출토한 토제 다리미의 형태가 천마총 출토 청동 다리미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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