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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19
한자 淸道德寺靈山殿石造如來三尊像-十六羅漢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산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78년연표보기 -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4월 30일연표보기 -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장처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산1지도보기
원소재지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산1
성격 불상|나한상
재질 석조
크기(높이) 94㎝
소유자 덕사
관리자 덕사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덕사 영산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여래 삼존상 및 십육 나한상.

[개설]

덕사의 창건은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상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연간이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는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가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라 하여 달아나는 개를 떡을 주어 머물게 하기 위해 절을 지었다. 이 절을 ‘떡절’라 하고, 한자로는 ‘병사(餠寺)’라고 표기하였으나, 후에 변화되어 덕사(德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덕사 영산전에는 석가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등 삼존불을 중심으로 나한상, 신장상 등 총 21구가 좌우로 배열되어 있다.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은 2007년 4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나한(羅漢)이란 불교에서 수행을 통하여 온갖 번뇌를 끊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모든 공덕을 갖춘 성자를 말한다. 소승불교에서 수행의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자로서 부처가 열반했을 때, 그 법을 전수받아 보호하고 지키는 수행자의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부처에게 직접 설법을 들은 불제자를 뜻하였으나 점차 일정한 수행을 쌓고 덕을 갖추게 되면 나한으로 불러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양과 공경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 십육 나한상 혹은 오백 나한상을 두고 있는 전각을 응진전(應眞殿), 나한전(羅漢殿)이라고 하고 있지만, 절에 따라서는 영산전(靈山殿)이나 팔상전(八相殿)에 두기도 한다. 영산전이나 팔상전에 안치하는 것은 나한이 법화경의 무대가 되는 영축산에서의 설법 시 부처의 제자로서 참석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나한이 법화경 혹은 법화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불제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형태]

석가 삼존불은 높이가 94㎝로 상태가 양호하나 나한상 중 3구는 신체에 균열이 있으며, 1구는 최근에 석고로 제작되어 지정에서 제외되었다. 석가 삼존불은 근래 개금하였고 나한상 역시 개채(改彩)하였다. 석가불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에 이른 순간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옷[법의]은 오른쪽 어깨를 덮고 있는 대의가 한 번 다시 접힌 채로 주름을 형성하고 있고, 팔꿈치 부근에서 반원 모양으로 끝단을 이루고 있다. 왼쪽 어깨에 걸쳐진 대의 주름은 위쪽은 좁고 아래쪽이 넓은 ‘팔(八)’ 자 모양을 하고 있다.

얼굴은 장방형의 얼굴에 턱 부분이 뭉툭하다. 눈썹과 콧날이 이어졌으며, 코가 우뚝하면서도 콧등이 좁다. 인중이 넓은 편이어서 입은 좌우로 벌어진 느낌을 주며, 전반적으로 매우 후덕한 인상을 준다. 무릎은 약간 완만한 형태이고, 주름은 발목부터 반원을 그리며 넓게 형성된다. 오른 발목에서 흘러내리는 주름은 크게 3개이며, 좌우로 퍼져 있다. 보관을 쓴 협시보살인 미륵과 제화갈라보살은 한 손은 손등을 위로하여 무릎 위에 두고, 한 손은 반대 방향으로 두고 있으며, 미륵보살은 연봉오리를 들고 있다.

현재 14구의 나한상이 있는데, 발원문을 살펴보면 존상과 그 존상을 위해 시주한 사람이 명시되어 있어서 본래 15구만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제15 존자상 밑에는 다른 상과는 달리 황명이(黃明伊), 김성정(金成仃) 등의 시주자가 적혀 있어 다른 상을 만드는 데 시주자와 다르게 적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14구만이 존재하며, 그 중 한 구는 최근에 도난을 당해 새로 조성하여 본래의 조성된 상의 모습과는 다르다. 나한상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만 두 손을 모은 입상이며, 나머지 나한은 사자, 죽비, 호랑이, 새, 염주, 붓, 연꽃, 경전 등을 지니고 있다. 삼존불에서 복장 발원문이 발견되어 1678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장품으로 발원문을 적은 종이[46×52㎝]와 함께 『묘법연화경』 2책이 확인되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징]

나한상과 석가불상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조각 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불상보다는 나한상이 조금 더 부드러운 인상을 갖고 있다. 이것은 나한의 도상이 자유로운 점도 있고, 부처보다 인간에 더 가까운 존재인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석가불상과 마찬가지로 나한상 역시 방형의 얼굴이지만 불상보다 좀 더 부드럽게 모델링되었고 자세도 다양하다.

[의의와 평가]

불상에서 나온 발원문을 통해 1678년의 조성 연도와 수두화상 승호(勝湖)가 상을 만들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상의 존명, 시주자들을 알 수 있어 조선 시대 경상북도 지역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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