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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청원 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62
한자 獨立請願運動
이칭/별칭 파리 長書 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 독립 청원 운동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을 청원
종결 시기/일시 1919년 4월 - 독립 청원 운동 성주 시장 만세 운동을 주도하던 송회근이 체포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남
전개 시기/일시 1919년 4월 - 독립 청원 운동 청도 유생 김정기 등 14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발생|시작 장소 독립 청원 운동 - 경상북도 청도군
성격 항일 운동
관련 인물/단체 김창숙|김정기|노상직|조긍섭

[정의]

1919년 3·1 운동 직후 유림계에서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개설]

1919년 3·1 운동 직후 영남과 호서 지역 유림의 대표적인 인물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 등 137명이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 강화 회의에 장서를 보내 독립을 청원한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의 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의 만세 시위운동 상황과 파리 강화 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설명하고,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해 곽종석이 대표로 나서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곽종석김창숙(金昌淑)과 상의하였고, 김창숙은 독립 선언서에 민족 대표로 유교 대표가 빠졌으므로 국제 활동의 사명은 유림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활동에 착수하였다.

김창숙은 191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고, 국제 여론을 조성하여 한국의 독립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령 국제적인 활동이 실패하더라도 한민족의 민족 독립에 대한 염원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일제에 발각되는 경우 구속 소동이 일어나 안일(安逸)에 빠져 있는 유림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김창숙은 김정호(金丁鎬)와 추진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곽종석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을 대상으로 서명 작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운동자금의 준비에 착수했다. 한편 파리 장서의 문안 작성을 장석영(張錫英)에게 맡겼다.

곽종석을 중심으로 서명 작업과 자금 모금을 해 상경한 김창숙김복한을 중심으로 충청도 유림도 같은 취지에서 문안을 만들어 임경호(林敬鎬)를 파리로 파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김창숙은 임경호와 논의하여 서명자로 김복한 등을 추가하고, 자신이 대표로 파리에 가게 되었다.

[경과]

독립 청원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대표는 137명이었는데, 청도 출신 노상직(盧相稷)의 문인 김정기(金定基)를 비롯한 동문 14인도 함께 서명에 참여하였다. 김정기노상직조긍섭(曺兢燮)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독립 운동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하였다. 스승인 노상직이 1911년 만주로 망명한 후에 자신도 만주를 여행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김정기는 1919년 스승인 노상직의 뜻에 따라 동문인 안종달(安鍾達), 손상현(孫上鉉), 강신혁(姜信赫), 박상윤(朴尙允), 허평(許坪), 배종순(裵鍾淳), 이학규(李學奎), 유진옥(柳震玉), 안효진(安孝珍), 노도용(盧燾容), 이정후(李定厚), 박정선(朴定善), 이돈호(李墩浩) 등과 함께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유림들이 제출하는 독립 청원에 서명하여 옥고를 치렀다.

[결과]

독립 청원 운동 은 1919년 4월 12일 성주 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던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곽종석, 장석영, 송준필 등이 체포·투옥되면서 서명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청도 출신의 김정기를 비롯한 14명의 유생들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전국의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청원서를 작성하여 발송했다는 것은 유림들의 독립 의지를 서계(西界)에 천명하는 일이었다. 독립 청원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대표 137명 중 청도 출신의 유생 김정기를 비롯한 노상직의 문인 동문 14인이 함께 서명에 참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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