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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13
한자 高麗 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강래업

[정의]

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고려 멸망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청도의 역사.

[개설]

고려 시대 청도는 청도(淸道)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되고, 보양 국사운문사 중창을 비롯하여 많은 사찰들이 중창되어 불교 문화가 융성하게 발달한 시기이다. 이와 더불어 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하며 산업과 건축, 문화 등 청도군 내 사회 전반적으로 융성하게 발달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후기 김사미의 난을 비롯한 민란으로 한때 부곡으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지방 행정 체계 변천]

고려 초기에는 신라 제도를 그대로 이어 오다가 940년(태조 23)에 소산현, 형산현, 오악현을 합하여 처음으로 청도현(淸道縣)이라 하였다. 983년(성종 2)에 12목제 실시로 경주목에 속하였고 그 뒤 10도제 실시에 따라 영동도에 속한 청도현이 되었다가 1010년(현종 1)에 도주(道州)가 되었다. 1109년(예종 4) 감무(監務)가 설치되었으며 1012년 지방 행정제 개정에 따라 경주 도호부(慶州都護府) 소속의 도주(道州)라 하였다가 1018년에 밀양군(密陽郡) 소속의 청도현, 풍각현으로 분리·격하되었다. 1109년(예종 4)에 감무를 두었고, 1343년(충혜왕 4)에 김선장의 공으로 지군사로 승진되었다가 이듬해 감무로 환원 후 1366년(공민왕 15) 김한귀의 청으로 지군사로 승격되었다.

[불교문화의 발달과 『삼국유사』 집필]

청도군의 고려 시대는 불교문화가 중흥한 시기이다. 신라 시대 작갑사(鵲岬寺)라 불리던 운문사(雲門寺)는 고려 태조 26년 보양 국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운문선사라 사액하여 운문사로 불리었다. 이와 함께 1175년(명종 5)에 지눌이 적천사를 중창하였으며, 대적사, 용천사, 태산사, 덕사, 죽림사, 신둔사, 대비사 등이 이 시기 모두 중창되었다. 대부분의 사찰들은 모두 대승들이 주지로 있었으며, 사찰들도 모두 번성하였다. 고려 후기 1281년(충렬왕 7)에 일연운문사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였다.

[역사적 사건]

1193년 무신 정권 시기 김사미(金沙彌)가 농민들을 모아 운문산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소위 김사미의 난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극심한 수탈과 차별에 저항하며 일어난 민란으로 ‘운문 민란’ 또는 ‘청도 민란’으로 불린다. 1270년(원종 11)에 삼별초의 난을 일으킨 삼별초군 200여 명이 청도로 들어와 당시 청도 군수 박종(朴宗)을 죽이고 함께 삼별초군의 근거지인 진도로 갈 것을 강요한 사건이 있었다. 삼별초군은 당시 청도군의 호장(戶長)이었던 백계영에 의하여 사살되고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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