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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12
한자 蘇山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일대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강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솔이산현을 소산현으로 개칭 후 밀성군의 영현이 됨
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오악·형산 두 현과 합쳐서 청도군이 됨

[정의]

757년에서 940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개설]

소산현(蘇山縣)은 통일 신라의 9주 가운데 양주(良州) 관내 밀성군(密城郡)[밀양]의 5개 영현(領縣) 중 하나이다. 757년(경덕왕 16)에서 940년(태조 23)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일대에 설치된 현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757년 지방 제도 개편으로 종래 사용해 오던 솔이산현(率伊山縣)소산현(蘇山縣)으로 고친 후 9주 가운데 양주(良州) 관내 밀성군(密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게 되었다. 경덕왕 때 지명을 한식으로 전면 개정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한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추진 배경에는 중대 말기 귀족 세력의 부상과 이에 따른 전제 왕권의 약화를 들 수 있겠다. 따라서 경덕왕의 한화 정책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중대 전제 왕권의 회복과 새로이 부상한 귀족 세력의 힘을 누르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담긴 정책이라고 하겠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밀성군 조에 의하면 “소산현은 본래 솔이산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청도군에 합하여 속해 있다.[蘇山縣 本率已山縣 景徳王改名 今合屬清道郡]”라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 청도군 조에 의하면 “고려 초에 신라의 대성군과 오악·형산·소산 3현을 합쳐서 청도군이 되고 밀성군에 내속시켰다.[淸道郡一云道州 高麗初合新羅大城郡烏岳荊山蘇山三縣爲郡 來屬]”라고 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 연혁 조에 의하면 “본래 이서소국으로 신라가 이를 멸하고 솔이산, 오도산, 경산 세 현을 두었고, 경덕왕 16년에는 세 현의 이름을 고친 후 모두 밀성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23년에 세 현을 합쳐서 청도군을 두었다[本伊西小國 新羅滅之 置率伊山烏刀山驚山三縣 景德王十六年改三縣名俱爲密城郡領縣 高麗太祖二十三年合三縣置淸道郡]”라고 하였다.

또 고읍(古邑) 조에 의하면 “소산은 동으로 50리[19.636㎞]이며, 매전역땅이다. 본래 솔이산성이며 경덕왕 16년에 소산이라 고쳐서 밀성군의 영현을 삼았고, 고려 초에 본군에 합하였다.[蘇山 東五十里 買田驛地 本率伊山城 景德王十六年改烏岳爲密城郡領縣 高麗初合于本郡]”라고 하였다.

[내용]

757년(경덕왕 16) 종래에 사용해 오던 지명인 솔이산현소산현으로 개칭 후 밀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오악·형산 두 현과 합쳐서 청도군이 되었다. 그리고 소산현의 위치는 『대동지지』 청도 고읍조에 따르면 읍치의 동쪽 50리에 위치한 매전역에 있었다고 하며, 『대동여지도』에도 매전 부근에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의 청도군 매전면 일대로 추정된다.

[변천]

757년 지방 제도 개편으로 솔이산현소산현으로 개칭 후 밀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그리고 후삼국 통일 전쟁 중에 이 지역 호족 세력의 향배나 전략적 중요성이 고려되어 940년에 형산, 오악 두 현과 합쳐서 청도군이 되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 역원·고적 조와 『대동지지』 청도 고읍·방면 조에 따르면 옛 소산현 일대에는 고려 시대에 매전 부곡이 설치되었다가 조선 전기에 소멸되고 매전역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상남면 일부와 중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매전면이 되었고, 1934년 종도면이 폐지될 때 6개 리가 매전면에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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