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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읍지』[1832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341
한자 淸道郡邑誌一八三二年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청도군 읍지』 간행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저자 청도군
편자 청도군
간행자 청도군
권책 1책[20책 중 제11책]
행자 10행 자수 부정
규격 22.6㎝[가로]|35㎝[세로]
권수제 청도군 읍지

[정의]

1832년 청도군에서 만든 읍지로서 『경상도 읍지』에 수록되어 있다.

[개설]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는 정조 대인 18세기 동안, 1832년, 1871년, 1895년, 1899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판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1832년, 1871년, 1895년 판본은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판본은 정확한 작성 연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호구수가 1786년의 병오식(丙午式)을 기재하고, 전결·전세·대동 등은 1785년의 을사조(乙巳條)의 내역을 기록하고 있어서 정조 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청도군 읍지』는 『여지도서(與地圖書)』[1757∼1765년]의 「청도군 읍지」와는 제언(堤堰) 조가 첨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구성이 비슷하다. 또한 1832년에 만들어진 읍지와도 비슷한 항목이 많지만 강계(疆界), 능침(陵寢), 단묘(壇廟), 물산(物産), 한전(旱田), 수전(水田), 조적(糶糴), 읍재(邑宰) 등의 항목은 이후 명칭이 변경되거나 비슷한 항목끼리 통합되었다. 이렇게 볼 때 18세기에 제작된 『청도군 읍지』는 『여지도서』와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1832년]의 중간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서 그 상한은 1786년으로 볼 수 있다.

1832년 이후 정부의 주도 아래 전국적으로 읍지 편찬이 세 차례 더 진행되었고, 청도군 역시 이에 따라 동일한 시기에 읍지를 제작하였다.

[저자]

청도군에서 1832년에 간행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9세기 들어와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은 1871년, 1895년, 1899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하지만 영남 지역은 1832년에 작성된 『경상도 읍지』 20책 전부가 남아 있어 다른 지역보다 읍지 편찬이 한 차례 더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편찬 경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내역을 알 수는 없다.

[형태/서지]

『청도군 읍지』는 전 20책으로 되어 있는 『경상도 읍지』 내 제11책에 실려 있다. 형태 서지를 살펴보면, 표제는 ‘경상도 거제·거창·청도·초계 읍지(慶尙道巨濟居昌淸道草溪邑誌)’로 되어 있으며, 판본은 필사본으로서 크기는 가로 22.6㎝, 세로 35㎝이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읍을 그린 채색 지도(彩色地圖)를 삽입해 놓고 있다. 서책 사주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선인 광곽(匡郭)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계선이 있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행자수는 10행에 자수(字數)는 부정(不定)이다.

[구성/내용]

『청도군 읍지』는 『경상도 읍지』 11책에 거제·초계·거창과 함께 실려 있다. 수록 항목은 총 40항목으로서 일관된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읍지의 머리에 있는 채색 지도에는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하여 관아·향교·서원·산천·도로·봉수·역·사원 등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어서 청도읍의 건치 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里)·호구(戶口)·전부(田賦)·군액(軍額)·성지(城池)·임수(林藪)·군기(軍器)·창고(倉庫)·관액(關阨)·진보(鎭堡)·봉수(烽燧)·산성(山城)·학교(學校)·단묘(壇廟)·총묘(塚墓)·불우(佛宇)·공해(公廨)·누정(樓亭)·도로(道路)·교량(橋梁)·도서(島嶼)·제언(堤堰)·장시(場市)·역원(譯院)·목장(牧場)·형승(形勝)·고적(古蹟)·토산(土産)·진공(進貢)·봉름(俸廩)·환적(宦蹟)·과거(科擧)·인물(人物)[유현, 효자, 열부]·제영(題詠)·비판(碑板)·책판(冊板) 등으로 이루어져, 역사·지리·정치·경제·사회·문화·풍속·인물·시문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일부를 살펴보면 호구는 원호 7,351호에 남자가 15,240구, 여자가 17,370구가 있으며, 성씨는 청도를 본관으로 하는 백(白)·이(李)·조(曺)·최(崔)·손(孫)·김(金) 외에 신증(新增)으로 고성·경주·재령 이씨, 밀양·죽산 박씨, 김해 김씨, 밀양·일직 손씨, 포산 곽(郭)씨, 부계 예(芮)씨, 팔려 현(玄)씨, 창녕 장(張)씨, 아산 장(蔣)씨, 경주 최씨 등이 있다. 관방·진보·목장·도서 항목은 청도에 없기에 무(無)로 표시되어 있고, 환적은 청도군의 지방관을 지낸 자들의 명단으로 고려 시대의 금의(琴儀), 민종유(閔宗儒) 등 2명과 조선 초 문여량(文汝良)부터 읍지가 만들어진 1832년(순조 32)의 홍세주(洪世周)까지 총 144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외에 제영(題詠), 비판(碑板)에서는 시와 비문의 내용이 상세히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1832년에 간행된 『청도군 읍지』는 이전에 편찬된 읍지에 비하여 가장 내용이 충실하고 방대하며,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각 읍의 호구가 모두 신묘식(辛卯式)[1831년]으로 되어 있고, 전부(田賦)도 시기전(時起田)이 신묘식이며, 환적 및 기타 항목도 기재 내용이 1832년에서 그쳐 있어 순조 말기의 시대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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