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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83
한자 德陽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풍각면 덕양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풍각면 덕양동에서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5.65㎢
가구수 142가구
인구[남,여] 297명[남자 146명, 여자 151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덕양리는 자연 마을인 가양과 송월, 덕암[근촌], 승마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가양의 옛 지명은 가을양(加乙陽)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밀주지(密州誌)』에는 ‘제내리(堤內里)였고, 동쪽에는 극락제(極樂堤)가 있으며,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옛 탑이 남아 있다.’라고 되어 있다. 송월(松月)은 솔월이라고 부르며, 가양동의 북쪽에 있다.

[형성 및 변천]

1709년 이전에는 밀양 땅이었으며 『밀주지(密州誌)』에는 현남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구부에 속하면서 이동면(二東面)으로 되었다가, 1895년 청도군으로 이속되었다.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에 풍각면은 현내면과 이동면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덕양리는 이동면에 속해 있었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덕암동과 가양동을 병합하여 덕양동이라 하여 풍각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덕양동에서 덕양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천황산 줄기인 월은산 아래에 있다. 천황산 줄기가 뻗어 타리 고개를 이루어 옥산리와 갈라 놓고 있으며, 녹명리의 죽바위가 있는 곳에서 끝이 난다. 싱매산[승마]은 동산의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옛날에는 띠고개라는 잘록이가 있어 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극락지(極樂池) 안에 있던 극락사(極樂寺) 절터 조금 위에는 풍혈(風穴)이 있어 여름이면 찬바람이 나오는데, 두서너 사람이 겨우 엎드려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이다.

마을의 상당히 넓은 들은 경지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고, 다섯 곳의 저수지가 있어 수리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5.65㎢이며, 총 142가구에 297명[남자 146명, 여자 15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옥산리, 서쪽은 풍각면 흑석리·월봉리·차산리, 북쪽은 풍각면 봉기리·송서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가장 큰 마을이 가양이고 덕암[근촌]과 송월, 싱매[승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싱매산 끝자락에서 국도 20호선 청려로가 지나가며 덕암과 양분되어 있다.

논은 2모작을 하는데 벼와 함께 일찍부터 수박을 심어 경제 작물 재배를 했다. 마을 주변에는 사과 농사를 많이 하고 있으나, 감나무로 대치되어 가고 있는 편이다. 곳곳에 우사(牛舍)와 돈사(豚舍)가 들어서서 축산이 많이 장려되고 있다.

덕양리 북쪽에 동서로 국도 20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각남면 옥산리에서 덕양리를 지나는 풍각 순환 버스와 사리에서 풍각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사동∼풍각 버스가 지나간다.

마을 입구에는 입석이 아직도 신앙의 대상으로 남아 있고, 극락지에서 옮겨온 청도 덕양동 삼층 석탑[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16호]이 마을 입구에 있다. 솔월 마을 앞에는 커다란 이팝나무가 있어 봄이면 하얀 꽃을 피우고 있으며,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에 매년 정월이면 제사들 지내고 있다.

극락지 안쪽 극락사 절터 아래의 현 과수원에는 가야의 토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 있고 모두 교란되었다. 가양에는 고분군이 산재해 있으며, 1980년대에는 이 지역에 수많은 고분군이 도굴되어 신라와 가야의 토기들이 많이 유출되었다. 문화 유적으로는 조효증의 재사인 풍양재와 박석희의 재사인 송강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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