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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44
한자 西上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화양면 서상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9년 - 청도군 화양면 서상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서상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화양면 서상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27㎢
가구수 262가구
인구[남,여] 615명[남자 301명, 여자 314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역사가 기록된 이래 청도군의 행정 중심이었던 곳이며,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1호인 도주관이 위치한다. 청도읍성의 성내 마을로서 과거 청도군 중심 마을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명칭 유래]

서상리동상리와 함께 청도군의 행정 중심지로서 관기(官基)가 되었던 마을이다. 서상 1리는 읍성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나뉘는데 안쪽은 성내라고 하고 바깥부분은 성밖이라고 부른다. 자연마을로 노상동(路上洞)과 노하동(路下洞), 오서동(鰲西洞), 하서부동(下西部洞), 비석리(碑石里), 노봉동(老峰洞), 질매끝 마을이 있다.

옛날에 읍성이 있던 때, 서문이 있었던 서상리는 노상동과 노하동으로 나뉘는데 노상동은 길 위쪽을 일컫고, 노하동은 길 아랫부분을 말한다. 오서동은 오산의 서쪽을 일러서 오서(鰲西)라고 하였다. 오산은 두 곳을 비정하는데, 하나는 낙안봉 또는 현재의 남산오산이라고 한다. 또한 순재 김재화는 화강지 안쪽에 작은 봉우리를 오산이라 했으며, 오서역(鰲西驛)이라는 작은 역이 있었다. 하서부동은 성 밖에 있었던 마을로 성내촌과 분리하여 동으로 하였는데, 하서부동 아래쪽에는 일반 주민과 구분되는 신분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다.

질매끝 마을은 각남면화양읍의 경계이며 화산 서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선인장(仙人掌)형 또는 주마분등(走馬奔騰)형이라고 해서, 동헌 소재지의 지기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에다 원을 지어 늑원(勒院)이라 했다. 늑(勒)은 말[馬]의 재갈을 말한다. 또 질매는 길마로 소나 말에 짐을 지울 때 얹는 장치를 말하며, 질매끝 마을은 지형상 그 끝부분이 된다고 해서 질매끝이라고 불렀다. 또 하나의 설은 일제 강점기 때 청도와 풍각을 잇는 신작로를 만들 때 1차 공사를 이곳에서 중단했기 때문에 길 맨 끝이라고 해서 길맨끝이 변하여 질매끝이라고 했다고 한다.

서상 2리는 노봉리, 고침, 비석리 등 세 개 마을이 합쳐져 있다. 행정 구역상 이 중 비석리만 서상리이고, 노봉리는 신봉리, 고침은 유등리에 속하지만, 행정상의 편의로 서상 2리로 하고 있다.

비석리는 옛날에 군수들의 선정비를 길 가에 늘어서 세웠던 장소이다. 하지만 청도 동헌이나 오서역에서 출발하여 대구로 가던 길목에 세웠던 비석은 지금은 1기만 남아 있고, 모두 묻히고 옮겨져서 없어졌다. 특히 지금은 대구 박물관 정원에 놓여 있는 비석의 이수 부분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노봉리는 굴골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한국 전력 공사 청도 변전소 뒤쪽에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기와를 만들던 공장과 기와굴이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여도 굴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변전소 공사 때 모두 허물어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상읍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하서동을 병합하여 서상동이라 하여 화양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79년에 화양면화양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양읍 서상동이 되었고, 1988년 서상동에서 서상리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상리는 관청이 밀집해 있었고, 관청 종사자들이 살았던 곳으로 화양읍의 다섯 동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동리이다.

서상리는 고려 시대 때부터 객관이 위치해 있었다. 고려 때부터 중앙 정부에서 공무로 지방에 내려 온 관리들의 숙식을 제공하였던 도주관(道州館)임진왜란에 소실된 것을 1665년(현종 6년)에 군수 유비(兪秘)가 새로 건립하였다. 원래는 6동이었다고 하나 차츰 없어지고 현재는 정청(政廳)과 양쪽 익사(翼舍)가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익사를 일본인들이 헐어서 일본인 신사(神社)을 만들었다가 해방이 되고 신사는 파괴되어 좌익사만 있었는데 2005년에 소도읍 가꾸기의 일환으로 읍성을 복원하면서 1차적으로 우익사를 다시 지었다.

도주관청도군청이 대성면으로 이전하고 난 다음 화양면사무소로 활용되다가 1979년에 화양읍으로 승격되면서 읍사무소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청도군내에 있는 선정비를 이곳 마당에 옮겨놓았다가 읍성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동문 쪽에 비석군은 다시 옮겨갔다.

[자연 환경]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아 물이 북쪽으로 흐른다. 북쪽은 청도천이 있어서 고침들을 지나 유등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서상리동상리와 마찬가지로 큰 산이나 강을 끼지 못한 마을로서 경작지가 비교적 없는 편이다. 오서들만이 서상리에 해당한다. 성안 마을로 지대가 높은 탓에 물이 풍족하지 못하였다고 전해지며, 과거에는 상수지(常水池)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현황]

2012년 8월 현재 면적은 1.27㎢이며, 총 262가구에 615명[남자 301명, 여자 31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화양읍 합천리·동상리·교촌리, 서쪽은 화양읍 신봉리, 북쪽은 화양읍 유등리와 경계를 접한다. 행정리는 서상 1리서상 2리가 있다. 마을로는 노상동(路上洞), 노하동(路下洞), 오서동(鰲西洞), 하서부동(下西部洞), 질매끝, 노봉리(老峰里), 고침, 비석리(碑石里) 등이 있다. 서상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국도 20호선이 지나고 있다.

화양읍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서상리는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1호인 도주관[객사]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09호로 지정된 청도 척화비도주관 앞에 있다. 청도읍성의 일부가 서상리에 있으며, 읍성 맨 아랫부분의 성내지(城內池)는 복원을 위한 발굴이 끝내고, 복원 중에 있다.

화양 파출소가 도주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화양의 치안을 담당한다. 매 5일과 10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있기는 하나 미미하다. 화양 농업 협동조합 농기계 수리소와 비료 판매소가 있으며 청도군의 전력을 담당하는 한국 전력 공사 청도 변전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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