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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40
한자 初峴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대성면 초현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0년 - 청도군 대성면 초현동에서 청도군 청도면 초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청도군 청도면 초현동에서 청도군 청도읍 초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청도읍 초현동에서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2.55㎢
가구수 46가구
인구[남,여] 102명[남자 47명, 여자 55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근대까지 유천역이 있었던 곳이다. 청도군 입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풍각현으로 넘어가는 긴 골짜기 입구에 마을이 있어서 초현(初峴)이라고 불렸다.

[명칭 유래]

초현이라는 이름은 고개의 첫 머리라는 뜻이다. 마을로는 초현(初峴)과 삼막(三幕), 관마[館里]가 있다. 청도와 밀양 간을 잇는 도로 옆에 형성된 자연 마을이 초현과 관마이다.

관마는 철도가 생기기 전에 성현역 소속으로 유천역과 유천관(楡川館)이 있었다. 이 때문에 관(館) 마을이라고 한 것이며, 줄여서 관마라고 불렀다. 처음 1905년에 철도가 개설될 때는 이곳에 있는 철도역을 사용하였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화물이 많아지니 역사가 비좁아 지금의 상동역이 있는 곳으로 역을 옮겼다. 유천역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해 오다가 2000년에 상동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옛 기록에는 관리(館里) 또는 관후동(館後洞)으로 표기된 것도 있다.

초현은 새 터라고 하는데, 1969년 태풍 사라 때 개울가에 있던 집들이 유실되고 언덕으로 올라와 자리 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산막골은 나무를 벌채하거나 구들장을 벌채할 때 산중에 들어와서 막을 짓고 사람이 처음 살았고, 산막이 변해서 삼막이라고 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하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관리동을 병합하여 초현동이라 하고 대성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하면서 청도면 초현동이 되었고,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초현동이 되었다. 1988년 초현동에서 초현리로 명칭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한재 골짜기의 입구에 형성되어서 앞뒤가 산으로 막혀 있으며, 음지에 조성된 동네의 동서에는 계곡이 있다. 좁은 골짜기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농토가 별로 없다. 청도천동창천이 만나서 응천을 이루는 곳이다.

한재천에서 내려오는 물과 청도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되는 지점에 있으며, 어떤 기록에는 도선(道詵) 국사의 비기에 갈룡음수형의 앞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철마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용이 물을 마시러 내려온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하는데, 용각산을 용의 뿔이라 하고 초현리를 용의 머리 부분으로 본 것이다. 청도천동창천이 만나는 곳은 지금은 곳곳에 저수지와 운문댐으로 인하여 물의 양이 많지 않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부근에는 항상 물이 많았다. 그래서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는 모습이라고 한 것이다.

[현황]

2012년 10월 현재 면적은 2.55㎢이며, 총 46가구에 102명[남자 47명, 여자 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청도읍 유호리, 서쪽은 청도읍 음지리, 남쪽은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북쪽은 청도읍 평양리·신도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초현과 삼막, 관마가 있다.

좁은 비탈진 산간 밭에는 과수를 주요 경제 작물로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논농사 지대로 미나리 재배가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초현리 중앙에는 남동∼북서로 지방도 902호선이 지나고, 국도 25호선초현리 동쪽에서 유호리 방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도 경찰서 한재 치안 센터로 알려진 검문소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잇는 국도 25호선[새마을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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